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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이 불온서적?…소신 판사였던 추미애 "영장 발부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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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세린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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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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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추미애 법무장관 후보자, 과거 판결 들여다보니…운동권 학생에 대한 압수수색·구속영장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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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시절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모습. /사진=추미애 의원 블로그
"소외계층의 권익 보호를 위해 법조인이 됐고 국민중심 판결이라는 철학을 지킨 소신 강한 판사였다."-5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 춘추관 브리핑

문재인 대통령은 5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판사 출신의 5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했다.

추 후보자는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5년 춘천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인천·전주지법, 광주고법을 거치며 10년간 판사로 일했다. 특히 추 의원이 판사가 된 1985년 봄은 전두환 독재정권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때였다.

때문에 법원에도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구속영장 등이 마구잡이로 청구돼 날아왔다. 대부분의 법관들이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 영장을 발부해주던 그때, 초임이었던 추 판사는 '소신껏' 판결을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 프로필./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 프로필./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추 후보자가 초선의원 시절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글을 발췌하면, 판사 보임 1년 뒤인 1986년 자신의 앞으로 불온서적 단속을 명목으로 전국 서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도착했다.

죄명은 '경범죄처벌상 유언비어 유포'. 그러나 '어떤 책의 어떤 내용이 유언비어에 해당한다'는 말도 없이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포함한 100권의 책 목록이 나열돼 있었다고 한다.

추 판사는 이것이 어떠한 법적 정당성이나 논리적 근거 없이, 오히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인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 영장이라고 봤다. '현대판 분서갱유'라는 것이 추 판사의 판단이었다.

추 판사는 '그런 영장에 내 이름을 남길 수 없다'고 생각해 영장을 기각했다고 한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추 판사가 있었던 춘천지법 외 전국의 모든 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됐다는 것.

비슷한 사건은 연이어 일어났다. 1987년 1월 민주화 운동을 하던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추 판사는 비슷한 시기 시국 사건에 관한 즉결 재판을 맡게 됐는데, 법원장이 법원장실로 자신을 불렀다고 한다.

법원장은 자신이 추 판사의 은사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수사기관에서 부탁을 받았다. 이런 학생은 법정 최고의 구류형 29일을 선고해달라. 추 판사도 살고 나도 살자"고 했다. 추 판사는 아무 말 없이 법원장실을 나와 불법집회를 한 학생에게 '구류 3일'을 선고했다.

1990년에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을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날아왔지만, 추 판사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추 후보자는 1995년 정계 입문 후 판사 시절을 돌아보며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라고 말했다. "시대가 부정하여 제가 했던 판사로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했던 행동을 한 것이 마치 영웅이 된 것 마냥 떠도는 것뿐"이라며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다닐 만큼 자랑스러운 기억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 이후에도 소외된 이들의 권익보호 활동에 힘썼다. 지난 1월 제주지법이 제주 4.3 당시 폭도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4.3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에서 사실상 '무죄' 선고를 내린 배경엔 추 후보자가 있었다. 추 후보자가 1999년 4.3수형인 2530명이 담긴 명부를 찾아내면서 재심 청구의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관련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국 14개 형무소별로 수형인 명단이 작성된 4.3수형인 명부가 사실상 군사재판의 불법성을 입증할 유일한 기록이 됐다. 제주4.3도민연대는 이를 바탕으로 진상조사를 벌였고, 2015년부터는 수형생존자 18명에 대한 재심청구 재판을 준비해 결국 승소했다.

추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인 지난 2017년 8월에도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사건에 대해 사법부가 원심에서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당시 재판부가 선고 직전 공판기록을 통째로 분실하면서 공정한 판결이 불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사법부가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사건에 관여해 허위 증거를 만들고 불법 수사를 자행한 검찰과 공범이라는 주장으로, 사법부의 반성과 진실 규명을 촉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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