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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토의 정원사' 그리고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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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희 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
  • 2019.12.09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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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
이성희
이성희
을 때 누구나 그랬듯이 미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다. 그 상상의 세계에서는 비행자동차가 고층빌딩 사이를 날아다니고, 로봇이 집안일을 도맡으며, 모든 병이 고통없이 치료된다. 도시 전체가 유리 돔으로 덮여 있어 일년 내내 쾌적한 기후를 유지하며, 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거리에는 행복한 미소를 짖는 사람들이 여유있게 오가는 그림이다. 어린 나이에도 내가 그런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부족하고 고단했던 결핍의 시절이어서일까, 상상을 통해 잠시나마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이미 보편화된 자가용이 무인자동차로 대체될 날이 머지않았고, 초기단계의 로봇이 팔다리가 아닌 네트워크를 통해 가사를 도와주고 있다. 에어컨을 비롯해 사시사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해 주는 기계들이 보편화되었으며, 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도시의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십여년전만 해도 상상속에서만 가능했던 고성능 휴대폰을 저마다 손에 들고 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내 어릴적 상상이 서서히 실현되는 모습이지만, 한가지 다른 점은 거리의 사람들 표정이 상상 속에서만큼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생을 농협에 몸담아 온 필자가 눈 여겨 보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발표에 따르면 도시민의 31.3%가 은퇴후 귀농·귀촌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매년 인구의 1%인 50만명이 귀농·귀촌을 하고 있다. 국내 캠핑인구가 300만명을 웃돌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편리함과 안락함을 위한 지난 수십년간의 치열한 노력이 눈부신 속도로 결과를 내고 있는 지금, 왜 많은 사람들이 다소의 불편함과 고단함을 감수하면서 짧게 또는 길게 자연을 찾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UN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2018년과 2019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유럽 부국(富國) 핀란드는 보고서에서 "우리의 비밀은 자연이다. 다른 사람들이 치료하러 갈 때, 우리는 고무장화를 신고 숲 속으로 향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행복의 조건으로서 편리함과 안락함이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자연'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농촌', '고향' 등이 연상되고, 이어서 '휴식', '여유로움' 등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때 녹지가 잘 조성된 사설공원이나 수풀이 무성한 자연림만을 떠올리지 않듯, 우리의 자연에는 마을과 사람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가 그곳에서 마을을 이루고, 자연을 가꾸며 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국토의 정원사'라 불리우는 농업인들이며, 이 기능을 '농업의 공익적 기능'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정부의 역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국민이 행복한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중시하는 지속가능 농정으로 전환'한다는 정책방향은 타당하다. 분야별로 다양한 대책이 제시되겠지만, 그 최종목표는 '농업인이 각 지역단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안정적인 소득, 쾌적한 정주환경,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 공익적 가치의 촉진 등이 고민해야 할 과제들이다.

농협의 역할도 빼 놓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농협을 '은행', '국산농산물 유통기관' 등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농협은 일반 기업이 수익성이 낮아 진출하지 않는 전국의 농촌지역에서 금융, 농산물유통, 소매유통, 농자재 공급, 문화복지, 교육 등 지역공동체 유지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30년내에 지자체 10곳중 4곳이 없어질 수 있다는 '지역 소멸'이 거론되는 지금, 농협은 생산자단체로서의 역할 강화라는 그동안의 노력에 더해, 지역공동체의 유지·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깊이 인식하고, 명실상부한 지역종합센터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데 자원과 노력을 더욱 배분해야 한다.
필자가 지금 꿈꾸는 미래는 어린 시절의 미래와는 다른 모습이다.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에서 '국토의 정원사'들이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행복하게 살면서, 도시민들에게 자연이 주는 행복함을 제공해 주는 미래이다. 아이들이 논두렁·밭두렁을 지나 냇가에 고기잡으러 달려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행복한 모습이다.

우리가 과거 한 때 가지고 있었던, 그러나 수십년간 돌보지 않아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누구나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가꾸어야 할 미래이기에 '오래된 미래'라 이름지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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