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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정영채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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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익태 증권부장
  • 2019.12.1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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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여의도의 한 해도 저물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한·일 무역 갈등, 제약·바이오 사건 사고,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라임자산운용 환매 사태…말 그대로 다사다난했지만, 무엇보다 눈에 들어왔던 게 있다. 연초 전해진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의 ‘KPI(핵심성과지표)를 폐지’ 실험이었다. KPI가 뭔가. 직원들이 1년 동안 달성해야 할 성과 지표다. 공정한 평가와 성과를 높이기 위해 업무실적을 수치화했다. 이에 따라 고가가 매겨지고 연봉과 인센티브가 정해진다.

업권별로 무게감은 다를 수 있지만, 은행원들의 경우 속된 말로 여기에 목숨을 건다. 직급에 따라 급여가 철저하게 갈리는 탓이다. 승진을 못하면 급여가 오르지 않는다. 평가항목에 '통일'이 있으면 벌써 남과 북이 통일됐을 것이란 은행권 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대출, 신규카드 유치, 펀드 판매 등에 대한 압박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평가항목은 단기 실적 위주다. 과당경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파워인컴펀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판매 등부터 최근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판매 사태에 이르기 까지 은행들의 불완전 판매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당국이 KPI 개선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돈을 번 만큼 가져가는 증권업의 구조상 은행보다는 덜하지만, 증권맨들도 직장인이다.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상당 수 증권사 가 브로커리지 중심 영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는 KPI 영향이 컸다. 그런데 자산관리(WM) 분야에서 한발 앞서 이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과정 가치’를 도입했다. 판매 상품 수나 판매액, 수수료율 등이 우선되지 않았다. 고객과의 소통 횟수, 고객의 상담 만족도 등 ‘고객 만족 지표’가 더욱 중요해졌다.

실적 악화, 인센티브 감소 등의 우려가 쏟아졌다. 정 대표는 그러나 “가야 한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정작 가보지 못했던 항로로 바꾸기 위해 거대한 범선이 굉음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수익은 줄겠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30년 영업 현장을 누비며 체화한 “영업직원의 가치는 진정한 자기 고객의 가치규모로 결정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직원들에게 “‘이게 얼마나 가겠어’라는 회의는 접어 두어도 좋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되겠어?’라는 우려가 뒤섞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연결기준 3분기 누적 순이익 3600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순이익에 육박했다. WM 부문도 호실적을 냈던 전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대표는 “가던 길로 가려는 엄청난 관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항로로 키를 돌리는 과정이 쉬울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나아가 고무줄을 너무 세게 잡아 당기면 체재가 바뀔 경우 원상태로 복귀하려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KPI 폐지는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체득하며 변화해야 한다는 것으로 재임 기간 중 속도 조절을 하겠다는 의미다.

정 대표는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작년 취임 이후 2년 연속 역대 최대실적을 이끈 탓에 연임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CE0(최고경영자)들의 재임 기간은 2~3년 단기다. 미국이나 일본 주요 투자은행 CEO의 재임 기간은 국내 증권사의 2~3배 정도다.

2~3년이란 기간은 CEO가 자신의 비전과 철학을 경영에 구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내부승진이나 증권 출신 CEO 중 장기 재임에 성공한 이들은 총자산이익률(ROA) 등에서 우수한 경영성과를 거뒀다. 정 대표의 신선한 실험이 성공해 관행화된 금융·자본시장에 또 하나의 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광화문]정영채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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