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열고.안 내고.안 나가고’ 日아베 총리에 국회란

일본 역사상 최장 기간 집권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가 "국회까지 무시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벚꽃 보는 모임' 스캔들 의혹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임시국회가 폐막할 때까지 버텼다는 평가다. 총리 측근들 사이에서는 "해가 바뀌면 분위기도 바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11일 일본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권이 입법부인 국회를 경시하고 있다며 정면 비판에 나섰다. 지난 9일 임시국회가 폐막했지만 부정 스캔들이나 정부 정책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제대로 자료를 제출하거나 답변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벚꽃 보는 모임' 초대자 명부 "파쇄해 없다"…의혹 규명없이 국회 폐막

[도쿄=AP/뉴시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9일 도쿄에서 임시 국회 폐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2.9.

아사히신문이 아베 정권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것은 최근 일본을 흔들고 있는 '벚꽃 보는 모임' 스캔들에 대한 대응이다. '벚꽃 보는 모임'은 국민 세금으로 열리는 국가 행사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이 자리에 자신의 지역구 후원자들을 초청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 스캔들로 번졌다. 이 모임에는 더구나 반사회적 세력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나 다단계 업체인 재팬라이프 전 회장이 초대돼 논란이 일었다.

야당은 이와 관련해 총리에게 직접 질문하기 위해 총리가 출석하는 예산위원회를 열 것을 요구했으나 여당인 자민당은 이를 거부했다. 정부 또한 초대자 명부를 이미 삭제했다며 발뺌했다. 종이로 된 명부는 파쇄했고, 데이터도 삭제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관련 데이터를 복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 한달이 넘었지만,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을 초청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총리와 관방장관도 언급을 피하고 있다. 지난 9일 저녁 총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벚꽃 보는 모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손에 들고 있던 메모로 시선을 돌리며 "오랜 기간 관행으로 진행됐는데, 초대자의 기준이 애매모호했고, 결과적으로 초대자 수가 늘어났다"고 답했다. 약 30분간 회견 중 '벚꽃 보는 모임'에 대한 설명은 1차례, 2분 남짓에 불과했다. 아사히신문 기자가 계속 손을 들었지만 질문자로 지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같은날 기자회견에서 "납득하지 못한 분들이 많고, 우리도 설명할 방법이 충분치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단이 '일련의 의혹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지' 묻자 "의혹은 잘 모르겠지만, 질문에는 정중하게 답해드리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정부 내에서는 임시국회가 폐막하면서 일단 한숨 돌렸다는 안도감이 퍼지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총리 측근은 "해가 바뀌면 분위기는 바뀐다"는 안일한 인식까지 보였다. 관계자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국회 당직자회에서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미·일 정상회담 의사록 "외교 기록이라 제출할 수 없다"

【뉴욕=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25일(현지시간) 뉴욕의 인터콘티넨탈 바클레이 호텔에서 미일 무역협정에 서명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악화되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한 일본의 기본적 입장을 설명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26일 보도했다. 2019.9.26

두번째 국회 경시 사례는 지난 9월에 열린 미·일 정상회담 의사록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동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구두로 약속 받았다고 발표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체결된 미·일 무역협정안에서, 일본은 농산물 시장을 미국에 추가로 개방하기로 명기한 반면 일본이 얻은 것은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일본의 대미 수출 금액 중 자동차는 약 35%에 달한다.

야당은 회담 의사 기록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으나 여당은 "외교 기록은 제출할 수 없다"며 이에 응하지 않았다. 야당인 국민민주당의 타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추가 관세의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반발하며 자동차 관세가 철폐되지 않을 것을 가정하고 경제 효과를 계산할 것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미·일 무역협정은 최근 일본에서 의회 비준이 끝나 내년 1월1일 발효될 예정이다. 일본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가을 대선을 앞두고 농업 관계자들에게 지지를 얻기 위해 조기 타결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정 선거 의혹으로 장관 2명 사퇴했지만 공식 해명 없어

세번째 사례는 부정 선거 의혹으로 낙마한 장관들이 국회 등 공식적인 자리에 불참하면서 해명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에는 경제산업상과 법무상이 일주일 새 잇따라 사임해 일본 정계에 큰 충격을 줬다. 스가와라 잇슈 전 경제산업상은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뿌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가와이 전 법무상은 부인인 가와이 안리 참의원은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운동 당시 법정 상한을 넘는 보수를 운동원들에게 지불한 의혹이 제기됐다. 두 장관은 사임 당시 "앞으로 설명 책임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으나 이후 국회 출석 등을 거부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스스로 설명 책임을 다하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감감 무소식이다.

반면 부정 의혹 관련자들은 겨울 보너스를 받는다. 국회폐막 다음날인 10일, 일본 공무원·국회의원의 겨울 보너스가 발표됐다. 임명 한달만에 사직한 두 장관은 재임기간이 너무 짧아 장관으로써의 보너스는 받지 못하지만, 국회의원으로써의 보너스는 324만엔을 받았다. 지난 7월에 당선된 안리 참의원은 194만엔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