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36.5]언론의 견제받지 않는 수사의 끝은

시간의 축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1997년 6월5일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이 소란스러워졌다. 대검 중수부에서 중대 발표가 있다는 소식이 기자실로 전달됐다. 심재륜 당시 중수부장은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 수사결과를 발표했고 이 내용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로 기사화되며 국민에게 알려졌다.

기자들은 검찰을 상대로 때로는 항의를 받으며 쫓겨나기도 했지만 취재 활동을 이어갔다.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나 국정원 댓글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사건 등도 언론의 끈질긴 취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검찰의 티타임은 중요 사건에 대한 윤곽을 잡고 취재방향을 설정해 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역으로 티타임에서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안 풀리던 사건의 실마리를 잡거나 모호했던 퍼즐이 맞춰지면서 해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검사들의 후일담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12월부터 시행된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은 피의사실, 수사상황 등 형사사건 관련 내용을 원칙적으로 공개 금지했다. 구두로 하는 브리핑도 할 수 없다.

각 청의 공개심의위원회 결정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브리핑이 가능해졌다. 검찰은 담당하고 있는 사건과 관련해 기자들과 개별 접촉을 할 수 없고, 기자들의 검사실 출입도 금지됐다. 피의사실과 수사상황 등 형사사건 관련 내용은 원칙적으로 공개가 금지되고, 공개소환 및 ‘포토라인’도 엄격히 제한된다.


이 같은 공보준칙의 핵심은 인권 강화에 있다. 확정판결 때까지 피의자는 무죄로 추정되는데 검찰 수사과정에서 노출될 경우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 사례가 있다. 인권 강화는 시대의 흐름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다. 문제는 인권보호라는 명분을 앞세운 규칙의 무차별 적용에 있다.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 고위공직자 등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때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에서 임명되거나 사회적 동의를 거쳐 임용된 인물들로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고 정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들의 잘못은 국민의 피해로 직결되기 때문에 국민의 알권리는 피해자의 알권리로 봐야 한다.

하지만 이제 수사가 진행돼도 어떤 혐의나 의혹을 받는지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럴 리 없기를 바라지만 외압이나 또 다른 사유로 수사가 축소돼도 알기 어렵다. 피해자인 국민은 자신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도 모른 채 소위 ‘밀실수사’ ‘깜깜이 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재수 전 부산 정무부시장 수사는 브리핑이나 설명 없이 진행되고 있다. 수사에 대한 취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일부 언론에 기사가 나와도 사실 여부를 알 길이 없다. 현재의 구도대로라면 부정부패사건을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수사과정의 문제점이나 수사로 밝히기 어려웠던 부분이 언론의 취재로 드러나는 기회의 확보도 어려워진다.

국가권력의 감시견(WATCH DOG)으로 불리는 언론을 두고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단언했다. 언론 없는 정부의 위험성을 지적한 말이다.

그럼에도 국가기관의 수사과정을 언론이 눈감도록 강요하는 법무부와 검경. 이 시점에서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려본다. 소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강력한 국가권력이 언론이라는 조명과 감시의 눈을 피해 어두운 그늘로 들어갔을 때 생기는 다양한 부작용은 누구의 몫이 될지 벌써부터 두렵다.

배성준 사회부 법조팀장(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