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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 페미니즘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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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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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26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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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 페미니즘이 변하고 있다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ἄ)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ς)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올 연말에 들려온 소식 가운데 가장 신선한 충격은 34세 여성 정치인 산나 마린이 핀란드의 새로운 총리가 됐고 심지어 연정에 참여한 핀란드 4개 정당 대표가 모두 여성이며 전체 각료 19명 가운데 12명, 그리고 핀란드 국회의원의 47%가 여성이란 사실이었다. 우리가 실체를 알 수 없는 북핵 위기나 미중 패권경쟁의 담론에 사로잡혀 있을 때 정작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우리 사회 내부의 중요한 의제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여성의 권리신장과 성평등 문제도 그러한 의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여성혐오를 뒤집어 보여주는 미러링이나 사회적 공개처벌의 효과를 가져온 미투논쟁 등이 주춤한 사이 페미니즘의 세계적 흐름은 일련의 보편주의적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즘 연구의 방법론 차원에서 보면 비판에서 구성으로의 변화가 두드러지고 내용 차원에서는 평등에서 자유로 이동하고 있으며, 분석의 대상으로 보면 특정 젠더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일반적인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도 글로벌 맥락에서 보이는 보편주의적 전환과 비슷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계기로 그 이후 전개되는 한국 여성운동은 적어도 3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번째는 엘리트 여성들의 대리자 운동에서 일반 여성들의 직접행동주의로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한국 여성운동이 소수 여성에 의한 대중 설득을 통해 남성 위주의 각종 정책을 바꾸는데 중점을 두었다면 2016년 이후 여성들은 여성운동단체나 페미니스트 운동가가 내세우는 깃발 아래 모이는 것을 거부하고 직접 자신들의 요구를 말하고 집회를 조직하는 등의 변화를 보여준다. 두번째는 사회적 성에서 생물학적 성으로 논의 초점의 이동이다. 2016년 강남역 사건이 생물학적 여성의 몸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이해가 자리잡은 이후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의 기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에서 시작된다는 인식의 전환 아래 어떻게 하면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관습으로부터 벗어나느냐가 페미니즘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세번째는 남성과의 평등에 대한 관심에서 독자적인 자유로의 관심의 전환이다. 그동안 한국 여성운동은 호주제나 여성할당제처럼 많은 논의가 양성평등의 논리 아래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여성의 자유에 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2016년 이후 한국 여성운동은 남성과 상관없이 여성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마음껏 할 수 있게 내버려두라는 자유의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정치철학자 수전 오킨은 존 롤스의 정의론이 한 가족의 가장인 남성만을 대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설정했다고 비판하면서 해방노예에게 약속된 40에이커의 땅과 한 마리의 노새조차 없는 여성이 처한 구조적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오킨이 특히 주목한 부분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여성 차별이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평화의 방어벽을 우선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이라고 유네스코 헌장은 말한다. 그러나 국가를 중심으로 전쟁 시뮬레이션이 난무하는 국제정치의 건조한 현실에서 세계의 주체로서 인간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가상의 게임을 하듯 이른바 전문가들은 유행처럼 국제정치의 작동방식을 전략적인 언어로 묘사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다양한 의제들이 정당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휩쓸려 간다. 공포를 동원하는 그들의 언어를 거부하고 치열하게 우리 삶의 미시적인 장면들을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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