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40%나 줄었지만 즐겁다"…회계사 출신 예술경영인

191224__세종문화회관 김성규 관장 피플 인터뷰 / 사진=강민석 인턴 기자 msphoto94@

"세종문화회관 재무제표요? 한 번도 본적 없어요. 회계사로서의 저를 내려놔야 세종문화회관을 이끌수 있죠."


회계사 출신 첫 세종문화회관 사장, 회계업계의 이단아. 그의 이름 김성규 석자 앞에 달리는 수식어다. 냉철하게 숫자로 모든 것을 말하는 회계와, 감성을 극대화하는 문화예술은 얼핏 물과 기름 같다. 공통분모가 없어보이는 극과 극의 일이지만 회계사인 그가 예술과 동거를 시작한 지는 올해 벌써 만 20년이 됐다.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서의 임기도 반환점에 다다랐다.

당연히 회계사로서 세종문화회관 경영상태를 들여다봤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한번도 보고서를 뜯어보지 않았다"며 "비영리법인은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받은 비용을 효율적으로 잘 집행하는 것이 답이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세종문화회관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영리법인인 일반 기업처럼 이익 많이 남기는 것이 좋은 경영으로 일컬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혹시 지적하고 싶어질까봐 재무제표도 일부러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예술계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세종문화회관과는 1999년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서울 시향을 포함한 세종문화회관 산하 9개 예술단의 연봉제와 평가제도 설계를 맡았습니다. 처음엔 참담했죠."

당시 대부분의 기업들이 업무 전산화를 마친 상황이었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도 이미 1996년 보급됐다. 김 사장은 "문서가 수기로 작성된데다, 이전에 경영컨설팅을 받은 적도 없어서 일을 맡고 참담했다"며 "그래도 이를 계기로 본격 문화예술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연봉은 당연히 줄었다. 한미회계법인 대표 시절 받던 것의 60% 수준이지만 그래도 '즐겁다'고 했다. "회계사들이 다양한 일을 하는데 예술 쪽엔 단 한 명도 없더라구요. 돈이 안되니까. 그래도 저는 제가 좋으니 사회공헌한다는 마음으로 계속 할 겁니다."

그의 괴짜 면모는 예술계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경영자 이전에 소프트웨어 회사 사장, 운동기구회사 관리부장, 창업투자회사를 거쳤다. 회계사스럽지 않은 다양한 시도는 변화를 좋아하는 그의 성품에서 비롯됐다. 남들이 싫어하는 취두부, 두리안, 고수 등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191224__세종문화회관 김성규 관장 피플 인터뷰 / 사진=강민석 인턴 기자 msphoto94@

다양성은 세종문화회관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에 이어 올 연말 2년째 진행중인 8m '허그(HUG) 베어' 전시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탈피해 세종문화회관만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 고민한 결과다. 실제 허그베어와 사진을 찍으려 세종문화회관을 찾는 관광객이 늘었다고 한다. 평소 곰을 좋아하던 김 사장에게 곰인형을 선물하는 이도 부쩍 많아졌다.

그는 연말 진행된 '인디학개론' 공연에서 세종문화회관 개관 후 처음으로 음료·주류 반입을 허용,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사장은 "영화관에서는 팝콘이나 오징어, 맥주 다 먹는데 누구도 방해받는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왜 공연장만 음식을 먹으면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어 공연 특성에 따라 즐길 수 있도록 변화를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게임콘서트에는 스마트폰 반입을, 오페라에는 와인 제공을 고려 중이다.

문화예술 경영의 대표주자인만큼 김 사장의 뒤를 따르고 싶어하는 후배들도 자주 찾아오지만, 매번 돌려보냈다. 김 사장은 "수습 회계사들이 뮤지컬을 좋아한다면서 일을 배우겠다고 무조건 찾아오는데 예술이 좋은 것과 예술을 위해 회계사로 일하는 것은 다르다"며 "적어도 5년 이상 일을 배우고 기본 역량을 갖춰 '진짜 회계사'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문화회관 수장이 된지 1년3개월, 남은 임기동안 그는 세종문화회관을 외국에서 벤치마킹하는 문화공연장으로 키울 작정이다. 그는 "세종문화회관은 산하 9개 예술단이 있는 프로덕션이자,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다목적 홀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세계 유일하다"며 "이 같은 특성을 살려 세종문화회관만의 비전을 만들고 우리가 벤치마킹 대상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