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LG까지…혹독했던 '아홉수', 2020년은?

'아홉수.' 2019년 재계를 요약하면 이 세 글자가 아닐까. 글로벌 경기 부진이 지속된 가운데 정부와 국회가 약속했던 규제 완화는 거의 없었다. 각 그룹 내부적으로는 송사와 가정사가 복잡하게 얽혔다. 어려워도 체질개선의 기회를 보는게 기업이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여건 어려운데 '고군분투'
어려울거라 했던 2019년이지만 닥쳐보니 더 어려웠다. 미·중 무역분쟁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기부진은 연중 지속됐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중공업, 석유·화학 등 대다수 주력 산업 수요가 줄었다. 3분기까지 수익이 악화된 가운데 4분기도 회복 신호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기에 때아닌 일본의 몽니가 겹치면서 산업계 전반이 독감을 앓았다. 양국 정치갈등이 경제전면전으로 번졌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산 차질이 예고되자 총수들은 저마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해외로 뛰어야 했다. 겨우 고비를 넘었지만 장기화되고 있는 수요 부진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정부와 정치권이 약속했던 규제완화·신사업지원 법안은 거의 이뤄진게 없다. 서비스산업발전법과 이른바 데이터3법 등이 주목받지만 뜯어보면 온갖 규제법안이 국회 문턱에 그대로 남았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울분을 토한 그 내용이다.

재계는 그럼에도 '사회악' 취급을 받았다. 청와대가 대안으로 내세우던 남북관계마저 냉각되자 경제단체의 활동은 철저하게 제약됐고 재계 목소리를 낼 통로는 거의 남지 않았다. 각종 송사와 규제가 계속됐다. 정부와 정치권 압박만 커졌다.


각 그룹 내부 상황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삼성은 노조 관련 재판을 받던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인 시점이다. 현대차 역시 노사갈등에 몸살을 앓았다.

SK는 새 가정을 꾸린 최태원 회장의 사회적가치 올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수용 전제 1조원대 위자료 맞소송이 여론을 달궜다. LG는 구광모 회장 체제가 본격 가동되는 가운데 SK와 배터리 특허소송 '전면전'을 치렀다.

'좌고우면 시간없다' 혁신과제 앞둔 재계

190115 청와대 향하는 기업충수들15일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열리는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기업 충수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하는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 모여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2019.1.15 <이승환기자>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더 미룰 수 없는 혁신과제에 새해 벽두부터 재계가 고삐를 죄고 있다. 사업의 골든타임이 다가온 분야가 대부분이다.

정의선 현대기아차 총괄부회장은 내달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0에 직접 참석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동생이자 최측근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비롯한 CEO(최고경영자)들을 총출동시킨다.

두 그룹을 관통하는 건 미래 모빌리티다. 현대차는 승용차 한계를 넘어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AM), 일명 하늘을 나는 차로 비행 시장까지 사정권에 두고 있다. SK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중심으로 그룹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을 통한 차량 내 미디어, SKC 등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 소재 혁신에 나선다.

삼성은 노사문제에 대한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공식 사과문을 내고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을 선언했다. 무노조경영을 지속해 온 삼성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변화다. 구광모 회장이 키를 잡은 LG그룹은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그룹의 미래가 달린 핵심사업 강화에 명운을 걸고 나서고 있다.

한화는 김승연 회장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전략부문장(부사장)이 그룹의 현재와 미래 성장동력을 틀어쥐고 본격적인 경영 시험대에 오른다. 조양호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한진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조원태 회장은 가족 간 불화를 딛고 그룹을 안정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을 감안하면 낙관적이었던 때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2020년을 맞는 재계의 긴장감은 여러 면에서 예년에 비해 매우 크다”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 그룹을 통째로 탈바꿈하는 혁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