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들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면 뭐라 하는지 아세요?"

"하나같이 '누구나 그 자리에 있었으면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하세요. 그럼 저도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죠. 대단한 일을 하고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매번 고개가 숙여집니다."

최민호 LG복지재단 사무국장(47·사진)은 4년 4개월 동안 대한민국 의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2015년 9월 LG그룹이 우리 사회의 의로운 사람들을 찾아 알리는 'LG 의인상'을 만들면서부터 쭉 이 일을 했다.


사람의 얼굴은 자기가 하는 일을 닮아가게 된다고 했던가. 뿔테 안경에 적당히 마른 체구의 최 사무국장의 표정에도 사람 좋은 웃음이 넉넉했다.

LG 의인상은 제보나 언론 보도로 후보군을 추린 뒤 사실 확인을 거쳐 심사위원회에서 최종 선정한다. 심사위원은 공정성을 위해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33년 동안 무료급식 봉사를 이어오다 지난해 12월 의인상을 수상한 정희일 할머니(95)까지 LG복지재단은 모두 117명의 숨은 의인을 찾아냈다.

최 사무국장은 의로운 행동의 순서를 따질 순 없지만 사건 현장에서 고인이 된 의인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돌이켰다.


김선웅군(당시 19세)은 2018년 10월 새벽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다 손수레를 끌던 할머니를 돕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은 뇌사 상태에 빠진 김군의 생전 뜻대로 고인의 장기를 7명에게 기증했다.

지난해 여름 경기도 안성시 종이상자 공장 화재현장에 출동했던 석원호 소방위는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해 검은 연기로 가득한 건물에 진입했다가 70대 부친과 10대의 두 자녀를 두고 순직했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의인상 선정 과정에서 주변 분을 통해 고인이 된 의인들의 생전 얘기나 남은 유족들의 얘기를 전해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죠. 그런 분들의 기억이 오래 남다 보니 아무래도 그 분들의 삶의 궤적을 쫓아 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의인들이 상을 받은 뒤 보여준 행동에 더 울컥했던 적도 많다. 2018년 8월 경북 봉화군 소천면사무소에서 엽총을 쏘는 범인을 맨몸으로 제압해 추가 피해를 막은 박종훈씨는 상금 3000만원을 사망한 면사무소 직원의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같은 해 10월 강원도 홍천군 빌라 화재현장에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3세 어린이를 구조한 김인수 소방위 등 홍천소방서 대원 6명도 상금 6000만원을 강원소방장학회와 화재현장에서 구조된 어린이 가정에 전액 기부했다.

LG 의인상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는 의인들의 연락처를 구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 정도로 어려움이 적잖았다고 한다. 관계 기관의 협조를 받기 위해 전화를 몇 통씩 걸던 일이 다반사였다. LG복지재단은 지난달 경찰청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이제 더 많은 의인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최 사무국장은 "돌아보면 의인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 이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주변에 빛을 비춘 경우가 많았다는 것.

"다른 이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죠. 그래도 5년 가까이 지켜보니 이런 '평범한 이웃들'이 여전히 많기에 살만한 세상 같아요. 올해는 더 많은 의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