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눈이 안 와요"…"딸아, 지구가 아프대"

경기도가 고향인 최영진씨(40)는 어릴 때 겨울을 참 좋아했다. 소복소복 눈이 쌓이는 걸 보며 감탄하고, 나가서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고, 아빠와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지난 주말 6살 된 딸이 "아빠, 눈이 왜 안 와요?"라고 묻는 걸 듣고 가슴이 아팠다. 최씨는 "살면서 이렇게 따뜻한 겨울은 처음 본다"며 "지구가 아픈 것 같다. 자업자득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말처럼 올 겨울은 유독 따뜻하다. 서울 등 내륙엔 며칠째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제주 최고 기온은 7일 오후 1시25분 기준 23~24도가 기록됐다. 봄이나 다름 없는 날씨다. 올 들어 최고 기온이었고, 1923년 제주서 기상 관측을 한 이후 역대 최고치란다.


이상 기후에 사람들은 비로소 경각심을 느끼고 있다. 날씨가 이상하단 말로 시작해, 지구가 위험하단 생각까지 미치는 분위기다. 올 겨울이, 지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대체 무엇일까.

'따뜻한 겨울', 해수면 기온 상승이 원인


고온 현상 원인으론 '해수면 기온 상승'이 꼽힌다. 특히 우리나라 남쪽, 대만 인근 해수면 온도가, 최근 30년 평균보다 1도 정도 높아졌단다. 이로 인해 공기가 따뜻해져 올라오고, 수증기 구름이 발달해 눈 대신 비가 온다.

당장의 원인만 살펴볼 게 아니다. 길게 변해온 걸 살펴야 하고, 앞으로도 길게 봐야한다.


우리나라는 최근 47년 동안 해수면 온도가 1.18도 올랐다. 1도 안팎이라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만 높아져도, 해수면이 26~77cm 상승한다. 산호초가 90% 가까이 사라지고, 어획량은 150만톤 줄어든다.

지구 온난화다. 이상 기후는 이미 곳곳서 관측되고 있다. 과거엔 북극의 얼음이 녹는 얘길하고, 북극곰이 사는 굴이 무너져 어미곰과 새끼곰이 죽는 얘길 했지만, 이젠 그 단계도 넘어가고 있다. 주위서 쉽게 관측된다. 따뜻한 겨울이 그렇고, 고농도 미세먼지가 그렇고, 폭염과 한파, 기록적 폭우가 그렇다. 이미 주위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4월19일, 기후변화주간 개막식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주 한강에선 벚꽃이 만발했다. 개화 시기는 일주일 앞당겨졌다"고. 그러면서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지구가 아프다"…경각심 느끼는 사람들


눈에 띄게 달라지는 자연 현상들을 보며, 비로소 경각심을 느끼는 이들도 늘고 있다. 나 하나라도,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며 나서는 이들도 많다.

직장인 조정호씨(37)는 지난해 초부터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있다. 조씨는 우연히 케이블 채널서 환경 다큐멘터리를 본 뒤, 자차로 출근하던 걸 그만뒀다. 차량서 내뿜는 물질, 그런 것들이 환경오염을 부추긴단 생각을 새삼 하게 돼서다. 조씨는 "'나 하나쯤이야와, 나 하나라도'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아들에게 더 나은 지구를 물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올 겨울부터 집에서 내복을 입고 있는 직장인 신소희씨(41)도 비슷한 사례다. 신씨는 "이상기후를 보며, 지구가 많이 아프고,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내는 신호란 생각을 한다"며 "집에서 위아래로 내복을 입고, 기온을 평소보다 2도 낮췄다. 생활하는데 지장이 전혀 없더라"라고 했다. 그는 "난방을 줄여 환경에도 기여하고, 난방비도 아끼고 일석이조"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