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트럼프, 이번엔 '병력 투입' 문제 대립

6일(현지시간)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 사무총장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동맹국 외교관료들과 '미국-이란' 충돌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사진=로이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 동맹국들이 중동에 병력을 증강하라는 미국 요청에 사실상 거부의 뜻을 드러냈다. 취임 이후 나토 동맹국들을 방위비 문제로 압박하며 ‘나토 회의론’까지 불러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국 간 마찰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9일(현지시간)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 중동에 관해 나눈 통화를 언급하며 “미국이 국제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데 있어 나토 역할을 강조한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나토군을 전투에 투입하는 게 항상 최선책은 아니다”고 병력 강화 요청에 선을 그었다.

총장은 “나토군 투입이 필요할 때도 있으나, 최선은 동맹국 배치 이전에 지역군이 스스로 테러와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나토가 지역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은 인정하나, 중동 역내 불안이 심화하는 현 상황에 흔쾌히 유럽국 병력을 증강하긴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총장의 발언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29개 동맹국에 중동 분쟁지역에서의 역할을 확대하라고 요구한 이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백악관에서 이란의 이라크 미군기지 미사일 공격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갖고 "나는 중동 상황에 더 많이 관여할 것을 나토에 요청할 것"이라고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 29개국 국기/사진=로이터

나토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소탕하기 위한 국제연합군의 일부로서 2018년 10월부터 이라크에서 병력 훈련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이라크에 500여 명의 병력도 주둔 중이다.


그러나 나토는 유럽 이외 지역에서 미국이 연관된 갈등 상황에 개입하길 꺼려왔다. 3일 미국이 카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사령관을 제거한 이후 군사 긴장이 고조되자 7일 병력 일부의 철수를 결정했다. 앞서 4일엔 이라크에서의 '대IS·대테러' 군사훈련을 중단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나토 관계자는 "우리 인력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모든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일부 인력을 임시로 이라크 안팎의 다른 곳에 이동시킬 것"이라고 했다. 나토는 미국과 이란이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면 미국에 군사지원을 할 건지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로이터

나토가 중동 내 적극적인 활동을 망설이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다시 한번 대립각을 만들 가능성이 커졌다. ‘방위비 문제’로 시작한 미국의 나토 압박이 향후 ‘병력 배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부유한 나토 국가들이 방위비 분담에서 ‘무임승차’한다고 공격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 비공개 모임에서 “트럼프가 재선하면 나토 탈퇴가 현실화할 수도 있다”고 하기도 했다.

나토 유럽국과 미국의 갈등은 2018년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핵합의(JCPOA) 탈퇴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나토 주요 회원국의 반대에도 JCPOA 탈퇴를 강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