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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 죽겠다옹"…길냥이의 고단한 겨울[체헐리즘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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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 2020.01.1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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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고양이, 겨울 돌봄기(記)…영하 날씨에 꽁꽁 얼어붙은 물, 음식물 쓰레기통 서성여

[편집자주] 2018년 여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며, 공감(共感)으로 서로를 잇겠다며 시작한 기획 기사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식 같은 기사들이 나갔습니다. 꾹꾹 담은 맘을 독자들이 알아줄 땐 설레기도 했고, 소외된 이에게 200여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질 땐 울었습니다. 여전히 숙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차마 못 다한 이야기들을 풀고자 합니다. 한 주는 '체헐리즘' 기사로, 또 다른 한 주는 '뒷이야기'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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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가을에 만들어준 겨울집에서 동네 고양이가 나왔다. 따뜻하진 않더라도, 너무 춥진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엔 오가는 길에 더 많이 살펴본다./사진=남형도 기자
"추워 죽겠다옹"…길냥이의 고단한 겨울[체헐리즘 뒷이야기]
새벽 6시, 칠흑 같은 동네는 고요히 숨죽였다. 바깥은 영하 6도라 나오자마자 귓불이 금세 빨개졌다. 난 동네 고양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사뿐사뿐', 녀석들 발걸음을 닮아갔다. 놀라게 할까 봐서. 추운 날엔 눈에 더 밟혀 출근하기 전 살펴볼 요량이었다. 누가 아프진 않나, 갑자기 안 보이진 않나.

고양이 집 앞에 놓인 물통부터 봤다. 역시 꽝꽝 얼어 있었다. 겨울 추위는 이리 매서웠다. 그냥 두면, 차가운 얼음만 부질없이 핥다 포기할 터였다. 이 넓은 세상에 목을 축일 곳 하나 없다면 얼마나 서글플까. 그리 생각하니 몸에 걸친 따뜻한 패딩조차 미안해졌다.

상념에 잠겼을 때, 동네 고양이(하양이)가 빼꼼 고갤 내밀었다. 조용히 한다고 했는데, 인기척을 들은 모양이었다. 이어 옆집서 다른 고양이(얼룩이)가 반쯤 삐져나왔다. "잠 깨워서 정말 미안해”하고 혼잣말을 한 뒤 조심조심 뒷걸음질 쳤다. 속으론 안도했다. 이 겨울을 다행히 잘 보내고 있구나 싶어서.



길고양이 아닌, '동네 고양이'


강동구 재건축 단지에 사는 고양이들. 사람이 다 떠난 자리에 갈 곳 없이 남겨졌다. 이를 돌보는 캣맘들이 있었다. 폭우가 오던 날, 녀석들을 돌보러 갔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강동구 재건축 단지에 사는 고양이들. 사람이 다 떠난 자리에 갈 곳 없이 남겨졌다. 이를 돌보는 캣맘들이 있었다. 폭우가 오던 날, 녀석들을 돌보러 갔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동네서 오가다 마주치기만 했던 녀석들이 내 삶에 들어온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가을장마 때였다. 폭우가 퍼붓던 날, 서울 강동구 한 재건축 단지를 찾았다. 사람도 다 떠나간 폐허 속에서, 길고양이 100마리가 살고 있었다. 콘크리트 더미를 헤집고 다니며 물과 사료를 줬다. 녀석들은 비에 쫄딱 맞는 것도 잊은 채, 어디선가 하나둘씩 나왔다. 비가 그치고 노을이 질 무렵, 배불리 먹은 아이들은 꼬리 잡기 놀이를 하며 장난을 쳤다. 그 광경을 잊지 못했다.

그 길로 돌아와 길고양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스티로폼 상자로 집을 만들어줬다. 그리 인연이 시작됐다. 오가며 녀석들을 살폈다.

그때부터 난 아이들을 길고양이가 아닌, 동네 고양이라 불렀다. 그것만으로도 맘이 달라졌다. 길고양이라 할 땐 '어디선가 살겠지' 하는 맘이었다. 동네 고양이로 부르니 '나와 가까이에 있구나, 봐야겠구나'란 게 느껴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겨울 집을 만들어줬더니


가을에 미리 만들어줬던 겨울집. 그랬더니 동네 고양이가 그 안에 들어가 추위를 피했다. 함께 살아간단 행복이 이런 거구나 싶다./사진=남형도 기자
가을에 미리 만들어줬던 겨울집. 그랬더니 동네 고양이가 그 안에 들어가 추위를 피했다. 함께 살아간단 행복이 이런 거구나 싶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혹독한 겨울이 왔다. 올핸 춥지 않다고 해도, 24시간 바깥에서 지내는 게 길 위의 삶이었다. 그러니 마음이 더 쓰였다.

동네 고양이들에게도 그랬다. 밥자리에 겨울 집을 하나 만들어줬었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스티로폼 상자를 잘 씻고 말린 뒤, 안팎에 단열재를 붙인다. 앞뒤로 동그랗게 문을 내어준다(혹시 위험할 때 도망칠 수 있게). 눈에 안 띄게 검은색 포장지를 붙인다. 그리고 밥자리 근처에 두면 된다. 날아가지 않게, 묵직한 것으로 눌러주면 좋다.

그게 4시간 정도 걸렸다. 정말 녀석들이 살까 반신반의했었다. 어느 날 아침, 그 집 안에서 고개를 내민 녀석들을 봤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너무 춥진 않았으면 했는데, 그래도 그 안에 들어가 줘서.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줄 수 있어서.

밥자리에 오는 동네 고양이가 두 마리라 하나 더 만들어줘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고마운 동네 캣맘(아직 얼굴은 못 봤다)이 옆에 따뜻한 집 하나를 더 만들어줬다. 내가 만든 집도 비닐이며, 보온재로 더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서성이더라


음식물쓰레기통을 서성거린다, 겨울에 먹을 게 없어서. 굳게 닫힌 쓰레기통이 야속하다. 배부른 게 새삼 미안하다./사진=남형도 기자
음식물쓰레기통을 서성거린다, 겨울에 먹을 게 없어서. 굳게 닫힌 쓰레기통이 야속하다. 배부른 게 새삼 미안하다./사진=남형도 기자

물과 식량도 중요하다. 겨울엔 물도, 그나마 뒤졌던 음식물 쓰레기도 꽁꽁 얼어붙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죽음의 고비다. 그런 녀석들에게, 사료와 물이 있는, 밥자리 하나가 절실한 이유다. 그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점심시간에 광화문 근처 근린공원에 가끔 가는데, 그 길에 갈색 고양이를 봤다. 녀석은 냉면집 뒷마당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굳게 뚜껑이 닫혀 있어서, 부질없이 맴돌기만 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몹시 허기져 보여 배부르게 먹은 게 괜스레 미안했다.

편의점에서 고양이용 통조림을 하나 사다가, 녀석이 사라진 길목에 놔뒀다. '이제부턴 너도 동네 고양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영하 날씨, 물이 자꾸 얼어붙어서


물이 꽁꽁 얼었다. 겨울은 동네 고양이에게 혹독한 계절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물이 꽁꽁 얼었다. 겨울은 동네 고양이에게 혹독한 계절이다./사진=남형도 기자

특히나 물은 더 중요하다. 영하 날씨엔 삽시간에 얼어붙기 때문이다. 겨울철 동네 고양이들이 몸이 퉁퉁 붓는 걸 보고, 잘 먹어서 그렇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아니다. 물을 잘 못 마셔, 염분 배출이 잘 안 돼 그렇다.

지난해 12월 마지막 날, KBS '애피소드' 프로그램 양영은 기자, 그리고 한 캣맘과 서울 용산구 길고양이 급식소를 찾았었다. 애피소드는 '애니멀과 피플의 소중한 드라마'의 약자다(좋은 프로그램 깨알 홍보). 이날 새벽 6시40분쯤, 수은주는 영하 9도를 가리켰다. 손을 주머니에서 잠깐만 꺼내놓아도, 금방 시릴 정도였다.

나무로 된 급식소 안에 물그릇이 있었다. 물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릇을 뒤집어도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얼음을 깨고, 흙에 버리고, 거기에 따뜻한 물을 부어야 했다. 캣맘은 이걸 매일 두 번씩 한다고 했다. 귀찮지 않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귀찮을 때도 있죠. 근데 애들이 기다려요.”

캣맘들 사이에선 핫팩을 밑에 붙이는 방법도,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얼어붙는 속도를 늦추는 방법도 공유되곤 한다. 그것도 별 소용없단다. 자주 가서 물을 갈아주는 수밖에 없다. 일정한 시간에 가면, 녀석들도 기다리고 있단다. 따뜻하지 않은가. 서로 생긴 것도, 언어도 다 다르지만, 함께 만날 시간은 알고 또 기다리고 있다는 게.



동네 고양이를 살리는 '노크'



추위를 피해, 지하주차장에 들어온 동네 고양이. 따뜻한 곳을 찾아 차 안에 들어왔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고단한 삶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추위를 피해, 지하주차장에 들어온 동네 고양이. 따뜻한 곳을 찾아 차 안에 들어왔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고단한 삶이다./사진=남형도 기자

꼭 기억할 게 하나 더 있다.

지하 주차장에 갔을 때였다. 아주 자그마한 고양이가 살금살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라, 추위를 피해 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녀석은 내가 두려운지, 얼음이 돼 멀리서 날 바라봤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움직여 차에 올랐다. 이 공간은 너와 내가 함께 사는 곳이니까.

운전석에 앉은 뒤엔 습관처럼 발을 크게 구른다. 혹시 고양이들이 차 안에 들어와 있을까 싶어서다. 추위를 피하느라 녀석들이 들어온단다. 확인하지 않고 시동을 켜 달렸다간, 꼼짝없이 귀한 생명 하나가 사라진다. 단 1분이면 된다. 어렵지 않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작은 노크랄까.

이런저런 맘들을 기울이며, 함께 살아간단 기분이 꽤 괜찮다. 요즘엔 오가며 눈에 익은 녀석들을 더 오래도록 바라본다. 더 천천히 걷고, 더 많이 눈에 담는다. 놀라지 않도록, 속으로 많이 응원하고 있다.
털을 한껏 부풀렸다. 겨울이다. 올 봄에도, 내년 봄에도 보고싶다. 난 이미 네게 정이 들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털을 한껏 부풀렸다. 겨울이다. 올 봄에도, 내년 봄에도 보고싶다. 난 이미 네게 정이 들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길고양이 생명은 2~3년이란다. 기껏해야 겨울도 두 번이나, 세 번 정도다.

하루에 한 10분 정도, 내 작은 귀찮음으로 네가 조금이나마 오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꽃피는 봄을, 너희와 함께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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