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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에 '무죄' 선고…눈물 흘리며 사과한 재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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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호 기자
  • 2020.01.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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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70대 딸, 100세 앞둔 노모 곁에서 눈물…"국가가 이제야 진정한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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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뉴스1) 한산 기자 = 20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선거공판에서 고(故) 장환봉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고인의 부인 진점순씨(97·가운데)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0.1.20/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의 재심재판에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역사적인 무죄 판결을 받은 70대 딸은 100세를 앞둔 노모의 곁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아)는 20일 내란과 국권 문란 혐의로 기소된 고(故) 장환봉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포고령 제2호 위반은 미군정 시기에 발령됐고 이 사건 당시에는 미군정이 종식된 상태였다"면서 "형법상 내란 부분에 대해 검사는 공소사실을 증명할 아무런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고 제출됐더라도 불법 구금 이후 수집된 증거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자 방청석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환호성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김 부장판사도 판결문 낭독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며 "70여 년이 지나서야 유죄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밝히며 더 일찍 명예회복을 해드리지 못한 점을 국가가 대신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피고인석에 앉아 재판을 지켜보던 장환봉씨의 딸 장경자씨(재심청구인)는 무죄 선고 후 휠체어를 타고 기다리던 노모 진점순 여사(97)에게 다가가 꼭 안아 주며 "엄마, 아버지가 무죄판결을 받았어"라고 말했다.

장씨는 "국가가 진정한 사과를 이제야 했다. 증인들이 살아계실때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버지의 무죄판결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모든 분들이 무죄가 되고, 하루빨리 특별법이 제정돼 역사가 올바로 세워지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사건의 피고인인 고 장환봉씨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철도기관사로, 여수 14연대 군인들이 순천에 도착한 후 이들에게 동조했다는 이유로 계엄군에 체포돼 22일 만에 처형됐다. 이에 장씨의 딸(재심 청구인)은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을 벗겠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이후 대법원은 7년여 만인 지난해 3월21일 재심개시를 결정했고, 1달 후인 지난해 4월29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첫 재판이 진행됐다.

첫 재판에서 검찰은 "당시 판결서가 없어 4·3사건처럼 공소기각 될 수도 있다"고 밝혔고, 세번째 재판까지 검찰이 공소사실을 특정하지 못하며 실체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자 시민단체인 여순사건재심재판대책위는 1948년 당시 신문기사, 외신기자의 탐사보도, 국회속기록, 판결집행명령서 등을 발굴해 지난해 6월 재판부에 제출했다. 또 2500여명의 시민사회, 학자, 정계인사 등의 서명을 받은 의견서가 제출되면서 네번째 재판부터 속도가 붙었다.

검찰의 공소 요지는 '14연대 군인들이 전남 여수시 신월리 여수일대를 점령한 후 1948년 10월20일 오전 9시30분쯤 열차를 이용해 순천역에 도착하자 이들과 동조·합세해 순천읍 일원에서 국권을 배제하고 통치의 기본질서를 교란한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후 검찰은 지난해 12월23일 열린 6차 재판에서 "장씨의 형법 제77조 내란죄 및 포고령 제2호 위반 국권 문란죄'에 대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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