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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국민연금 위험한 '5%'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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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0.01.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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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산업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부는 시장보다 더 똑똑하고 항상 신뢰할 수 있을까?

정부가 시장에 더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시스템을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 무기는 국민연금의 의결권이다.

정부는 21일 '기관투자자의 권리행사를 강화'하고, '이사와 감사의 적격성을 제고' 하기 위한 상법, 자본시장법, 국민연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투명 책임 경영'이라는 대의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방법론에 문제가 있을 땐 이유를 제기할 수 있지만 이는 무시됐다. 시장의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사외이사의 임기제한(동일회사 6년 근속 금지)으로 올해 700여명의 사외이사가 교체돼야 한다. 사외이사 부족 대란의 우려가 나온다. 정부에서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인 1개사당 1.3명의 신규 선임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다른 얘기다. 동일인을 재선임할 수 있었던 데서 이제는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부가 오래된 사외이사를 못 믿겠다는 건데, 유례가 없을뿐더러 사외이사의 근속연수가 기업 감시능력의 척도가 된다고 믿는 것도 아이러니다.

5% 공시의무 룰의 완화는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번 시행령 개정 내용 중에는 국민연금이 더 자유롭게 기업의 경영에 관여할 수 있도록 '5% 룰'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행령 개정으로 ‘5% 룰’ 공시 면제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공적 연기금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 △위법행위를 저지른 회사 임원 해임청구 △배당과 관련한 주주활동 등을 위한 지분 1% 이상 매입 시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하는 의무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재계는 우려한다.

국민연금이 대규모 지분매입에 나서도 지분 매입 사실을 뒤늦게 알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외국계 공적연금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5일 이내 공시 의무에 변동이 없다며 과도한 오해라며 억울해 한다.

문제는 관치논란이다.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현직 장관이 국민연금 의사결정 구조의 최상층에서 결정을 내리는 전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대의명분과 취지가 아니라 그 실행과정에서의 우려가 크다. 정부가 기업 경영에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인용했다. 국회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의 시행과 관련해 "세부적인 사항을 조정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 될 수 있다"며 이런 언급을 했다.

맞는 얘기다. 이번 시행령 개정도 디테일에 문제가 있다. 취지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칼을 국민연금의 손에 들린 셈이다. 칼은 수술에 활용되면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하더라도 잘못 사용되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현재 그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다.

이번 개정안은 시장과 기업은 항상 정부보다 무능하고, 비효율적이어서 가르치고, 고쳐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스탠다드에 맞춰 세계 경제전쟁에서 1위의 자리에 올라선 경험들을 갖고 있다. 반면 정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믿음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다." 철학자 프레드리히 니체의 잘못된 믿음에 대한 우려의 말이 새삼 떠오르는 시절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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