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 "행정소송" 금융그룹이 달라졌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중요하다" "행정소송으로 갈 수 있다"


지난해말 두 금융그룹 회장의 연임에 대해 금융당국이 '리스크'를 우려하자 각 그룹에서 나온 항변이다. '운명의 날'로 불린 22일이 지나도 두 회장은 상당 기간 입지를 굳건히 할 전망이다.

'구속 피했지만'…조용병 회장, '유죄'에도 자리지킨 이례적 사례

신한은행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가운데)이 22일 오전 서울동부지법을 나서고 있다. / 사진=강민석 기자 msphoto94@

신한은행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아 온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22일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신한금융 이사회가 조 회장의 '유고' 기준으로 제시했던 법정구속은 피하면서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의 연임 확정까지 장애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조 회장은 1심 재판부로부터 유죄 판단을 받고도 자리를 지키는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2000년대 초 국내 금융권에 지주사 체제가 도입된 후 여러 명의 그룹 회장 또는 은행장들이 각종 논란으로 법의 심판대 앞에 섰지만, 검·경의 수사를 받거나 검찰에 기소되면 일단 현직에서 물러난 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4일 신한금융의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신한금융 사외이사를 면담하고, 조 회장의 법률 리스크가 그룹의 경영 안정성과 신인도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우려를 전달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얼마 후 조 회장의 연임을 결정하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했다.


당국으로선 현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다. 조 회장이 법정구속을 피해 당분간 신한금융의 경영안정성이 확보된 것은 다행이지만, 검찰과 조 회장 측 모두 항소할 예정인 가운데 2심 재판부의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우려했던 '법률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은 셈이다.
중징계 받아도 재심·행정소송…손태승 회장, '연임' 이상無같은 날 DLF(파생결합펀드) 손실 사태 관련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 두 번째 회의에 출석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역시 이변이 없는 한 3월 주총에서의 임가 3년의 연임은 확실시된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사진 뒷줄 가운데)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서 열리는 DLF 관련 2차 제재심의위원회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광범 기자

금감원은 지난해말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 수위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했다. 내부통제 미흡을 이유로 CEO(최고경영자) 제재가 가능한지 여부가 관건이지만, 오는 30일 3차 제재심에서 중징계가 최종 확정되더라도 손 회장의 입지는 흔들림이 없을 전망이다. 우리금융이 재심 요청, 행정소송 등으로 대응할 방침을 세워서다.

이렇게 되면 중징계를 받고도 자리를 지키는 CEO 역시 손 회장이 처음이 될 수 있다. 'KB사태'로 제재심에서 중징계를 받은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이 모두 자진 사퇴한 게 불과 6년 전이다. 과거 우리은행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 손실로 중징계를 받은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도 징계 취소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당시 KB금융지주 회장직에서 사임한 뒤 소를 제기했다.

업계에선 과거 법원과 금융당국에 엎드리기 바빴던 금융그룹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당국이 금융회사의 자율성 보장과 신중한 개입을 추구한 동시에 각 회사의 지배구조가 나아진 효과다. 실제로 신한금융 이사회는 "(조 회장의) 유고 상황이 발생해도 '컨틴전시 플랜'이 마련돼 있다"고 과시했고, 우리금융은 과점주주 중심의 '자율경영 체제'가 안착하면서 이른바 '관치'에 흔들리지 않게 됐다.

반면 CEO의 독주를 제어할 장치가 부족해졌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사외이사 제도가 여전히 거수기 비판을 씻어내지 못한 상황"이라며 "금융그룹 CEO와 사외이사가 유착할 경우 이들을 제어할 유일한 수단인 금융당국 칼날의 지나치게 무뎌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