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낙하산 자인...기업은행 노조 출근저지투쟁 철회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지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설 명절 관련 민심을 보고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유감'을 표명하고 은행장 선임 절차 개선을 약속하면서 기업은행 노조가 출근저지투쟁을 풀었다. 취임 26일째 노조에 막혀 본점 출근을 못했던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은행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이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와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정무적 판단을 한 것이다. 노조에 낙하산 인사를 자인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원내대표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기업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소통이 부족했고, 협의가 충실히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민주당을 대표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새해 기자간담회에서 "인사권은 정부에 있다"며 기업은행장 임명을 둘러싼 '낙하산' 논란을 일축했던 것과 결이 다르다. 오히려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낸 것을 인정한 것에 가깝다.

이를 두고 기업은행 사태 장기화에 부담을 느낀 청와대를 대신해 당이 총대를 멨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홍배 신임 금융노조위원장 당선자가 정책협약 파기를 내세우며 기업은행 노조의 출근저지투쟁에 가세한 데 이어 한국노총 새 위원장으로 뽑힌 김동명 당선인까지 기업은행 노조를 거들면서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압박감이 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조와 당정은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7일 서울 을지로 은행회관에서 회동을 갖고 서로의 요구사항과 출구전략을 조율했다.

이 원내대표는 노조에 대한 입장을 언급한 뒤 "한국노총과 금융노조에 변함없는 연대를 요청했고 총선에서도 민주당과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한국노총과 민주당은 한차원 높은 협력 관계를 지속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노동계의 반발을 무마하고 선거에서의 악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임을 시사한 것이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그동안 당정 측 인사들로부터 여러 통로를 통해 사과를 들었다"며 "다만 청와대가 직접 사과를 하기 어렵다는 것을 수용해 당정이 '깊은 유감'을 전하는 수준에서 투쟁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 원내대표의 발언이 나온 뒤 출근저지투쟁을 철회하고 윤 행장과 협의를 통해 '노사 공동 선언'에도 합의했다. 선언적이긴 하지만 노조추천이사제 등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이 대부분 반영됐다.

공동선언에는 △희망퇴직 문제 해결 △노조 동의 없는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 금지 △임원 선임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개선 △노조추천이사제 유관기관과 협의 후 추진 △정규직 일괄전환 직원의 정원통합 △인병 휴직(휴가)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윤 행장은 29일부터 본점으로 첫 출근한다. 오전 9시30분 본점 15층 대강당에서 취임식도 진행할 예정이다.

윤 행장의 첫 번째 과제는 임직원 인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1월 중순 이뤄졌던 상반기 정기인사와 이미 임기가 끝난 계열사 대표 인사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또 전국영업점장회의 개최 지연으로 일선 지점에서 영업 차질이 빚어졌던 만큼 영업 정상화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인사권을 강조하던 문 대통령의 스탠스를 민주당이 뒤집으면서 한국노총, 금융노조, 기업은행 노조 등에 끌려 가는 모양새가 됐다"며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