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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세] “임자 곁에 내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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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금평 기자
  • 2020.01.29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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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곁에 내가 있잖아” 이런 말을 들으면 감정이 격하게 쏠린다. 전지전능한 신의 보호를 받는 듯한 이 느낌, 감동도 모자라 뼛속 깊이 충성하고픈 마음까지 생긴다. 그건 직장 상사와 부하는 물론이고 연인 관계까지도 지배하는 달콤한 유혹이다.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들으면 “당신이 뭔데”라는 말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오지만, ‘위’인 사람에겐 고개 숙여 감동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내뱉는 대사 중 최고의 유행어는 대통령(이성민)의 한마디다. “임자,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하고 싶은 대로 해.” 결과적으로는 ‘암묵적 폭력’의 정당화 수단이지만, 최고 권력자가 지켜준다는 명분보다 더 큰 정의는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동기인 전 중앙정보부장을 암살하고, 부마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큰 그림’에서 이 같은 정서적 결속력보다 더 강한 지시를 찾을 수 있을까.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이 대통령을 배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말이 자신에게 준 ‘특혜’가 아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마다 써먹는, 닳고 닳은 ‘패밀리 정신’에 입각한 언어의 반복은 권력관계에서 유난히 도드라진다. 자기 손에 피 안 묻히고 사건 해결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대표적 결속어는 “우리가 남이가”였다. 남이 아니니 다 뭉쳐서 ‘남’을 혼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 윤총장님”하는 대통령의 언어 역시 ‘우리’라는 공동체로 묶은 정서적 결속의 언어로 비친다.

‘우리가 같이 식사를 했다고 해서/내가 당신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말아요’라고 노래한 김목인의 가사처럼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가 또 있을까. ‘우리’로 잘못 엮여 사달 난 사례가 한두 개가 아니다.

SBS 드라마 ‘펀치’에서 검찰총장(조재현)의 수족이자 영혼의 그림자였던 반부패부 검사(김래원)가 왜 결국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는지, ‘남산의 부장들’이 왜 죄다 최고 권력자와 맞서려 했는지, 그리고 지금의 정치가 왜 갈등과 혼란, 분열과 대립으로 점철됐는지 드라마와 현실은 낱낱이 보여주고 증명하려 한다.

버스 정류장에 가면 이상한 풍경과 자주 만날 수 있다. 버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승객들이 미리 일어나 달려가는 모습이 그렇다. 버스가 정류장에 선다는 엄연한 질서와 원칙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못한다. ‘나’를 지나칠까 걱정하는 마음이 어디 정류장뿐일까.

하물며 원칙도 규칙도, 문서화도 안 된 ‘우리’, ‘임자’, ‘가족’ 같은 단어들이 품은 정서에 흔들리는 걸 보면 아직 정의나 공정은 먼 나라 얘기 같다. ‘우리’를 강조하면 할수록 ‘우리’ 안에 갇힐 뿐이다. ‘나’를 만나는 시간은 언제쯤일까.

[우보세] “임자 곁에 내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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