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WHO도 '무증상 감염' 촉각…정부는 "근거부족"

[부산=뉴시스] 하경민 기자 =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28일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입국장 게이트에서 중국발 항공기를 타고 온 승객들을 상대로 체온 측정이 진행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우한 폐렴 국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중국발 입국자를 대상으로 검역과 건강상태질문서 제출을 의무화 했다. 2020.01.28. [email protected]

중국 보건당국에 이어 세계보건기구(WHO)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무증상 감염자의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인정했다. 반면 정부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방역대책이 국제사회 흐름에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8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은 이날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무증상 감염자도 전염성이 있을 수 있어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의 알려지지 않은 큰 문제 중 하나”라고 경고했다.

WHO는 전날 공개한 신종 코로나 관련 보고서에서는 무증상 잠복기 감염자의 감염력에 대해 “아직 사실로 판단되지 않았다. 이를 판단하려면 더 많은 감염자로부터 자세한 역학 정보가 취합돼야 한다”며 유보적 입장을 표시한 바 있다.

WHO가 잠복기 감염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하루 사이에 신종코로나 확진 환자가 수천명씩 늘어나며 날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는 전염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 사스 때 확진자 5300여명 추월

[우한=신화/뉴시스]22일(현지시간)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화중기술과학대학 통지의학원 병설 유니온 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 '우한 폐렴'과의 전쟁 선포식에 참석해 병원 깃발을 흔들고 있다. 앞서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을 사스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해당하는 '을류' 전염병으로 지정하고 '갑류' 수준의 대응을 하기로 했다. 2020.01.23.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29일 0시 기준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5974명, 사망자는 132명이다. 이는 하루 전보다 확진자 1459명, 사망자는 26명 늘어난 것이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확진자 수인 5327명을 넘어섰다.


사스 확진 환자의 경우 2002년 11월 전염이 시작돼 2003년 7월 WHO가 사스 방역 종료를 선언할 때까지의 수치다. 이번 신종 코로나는 사스와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되는 전파력을 보여준다.

중국 보건당국도 무증상 잠복기 감염자의 바이러스 전파를 인정한 상황이다. 마샤오웨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주임은 지난 26일 "사스와 달리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잠복기 동안 확산하는 경로를 밟았다"고 밝혔다.

마샤오웨이 주임은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제한돼 있는 데다 변종이 초래할 위험에 따른 불확실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 증가세가 치솟는 것은 증세가 있는 확진 환자뿐만 아니라 잠복기의 감염자들도 2차 감염을 초래한다고 본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잠복기 땐 전염력 가질 만큼의 바이러스 없어”

[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2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생 현황과 네번째 확진환자 중간조사 경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0.01.28. [email protected]

하지만 국내 보건당국은 무증상 감염자의 전파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28일 브리핑에서 "잠복기에 전염력이 있다는 것은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그런 증거나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잠복기에는 바이러스의 양도 매우 적고 혈액으로 나오는 양도 적기 때문에 검사로 인지하기 어렵다”며 “전염력을 일으킬 만큼의 바이러스 양이 있어야 전염력을 갖는다. 그것에 대해 살펴보며 대비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신종코로나의 잠복기 감염력에 대해선 국내 전문가들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중국 정부가 한 달도 안 돼 이를 파악할 만한 시간이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중국이 근거 자료를 줘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마샤오웨이 주임이 중국 보건당국 최고 책임자 중 1명이기 때문에 현재 발생하고 있는 환자들을 분석해 근거를 가지고 발표했을 것”이라며 “잠복기 전염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매우 낮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