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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탈진실 시대의 정치와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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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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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30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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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탈진실 시대의 정치와 지식인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ἄ)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ς)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직접 시민들과 소통하면서 기성 언론권력에 저항한다고 말한다. 사실을 왜곡하고 통계를 조작한다고 비난받지만 더 거대한 악을 무찌르기 위해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지지하는 사람도 많다.
 
‘탈진실의 시대’란 대중여론을 형성하는데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에 대한 호소가 객관적 사실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가리킨다. 애초 탈진실이라는 개념은 누구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에 맥락과 해석에 따라 서로 다른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의 상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합리적 오류 가능성이란 상식은 곧 진실을 무시하고 시민들의 선입견과 감정을 이용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반자유주의 세력에 의해 도전받기 시작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개인을 넘어선 교량형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낼 기술적 가능성 때문에 기대를 모았지만 의외로 탈진실의 시대를 확산하는 데 강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누구나 정치적 편견을 갖고 있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SNS는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어 폐쇄적인 개인적 연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가짜뉴스에 혼란스러워하던 개인들은 스스로 잘못된 정보, 자극적인 사실들을 만들어내고 정치적 낙인찍기에 동참한다.
 
모두가 소통의 혼란이 만들어낸 기회를 이용하고 의도적으로 미디어의 타락을 장려하는 사이 통계자료를 모으는 기관들이 커지고 진실산업(fact industry)이 팽창한다.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교화한 마케팅과 더 나은 홍보 및 선전과 함께하기 때문에 승리한다. 토니 주트의 언급처럼 우리 모두 거짓을 말하고 그들 역시 거짓을 말한다. 중요한 사실은 그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우리 편인가, 아니면 상대방 편인가일 뿐이다.
 
그러나 상대화하고 부유하는 진실 가운데 과학적인 검증을 통해 그것이 진실임을 확인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근대 과학이론은 스스로를 입증하기 위해 최소한 4가지 조건을 요구한다. 객관성(objectivity)은 누가 실험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함을 뜻하고, 신뢰성(reliability)은 반복해서 실험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옴을 의미하며, 타당성(validity)은 모든 과정에서 측정해야 할 것이 제대로 측정되었는지를 뜻하고, 비교가능성(comparability)은 결과를 일반화하는 표준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가리킨다.
 
물론 과학성의 무미건조함에 실망한 사람들이 개인의 목소리를 찾아 이른바 주관성(subjectivity)에 주목한다. 그러나 개인의 목소리도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다른 목소리와 만나고 토론하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 즉 그가 이승만이든 박정희이든, 또는 김구든 김대중이든 역사에서 그와 함께 논쟁하고 부딪치던 다른 목소리들과 동시에 듣지 않고 한 사람의 목소리만 따라가면 찬양과 숭배에 그친다.
 
랠프 다렌도르프의 지적처럼 지식인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은 우리가 가진 지혜를 의심하고, 당연한 것들을 궁금해하며, 모든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내가 아닌 누구도 감히 묻지 못한 것들을 묻는 데 있다. ‘탈진실의 시대’에 복잡한 사회·경제적 현실의 한 면만을 고의적으로 보여주려 하는 사람은 정치인은 될 수 있지만 지식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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