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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대한항공과 리더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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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0.02.10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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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의 일이다. 2017년 2월경 10대 그룹 내에 재계 3세와 따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는 부친의 뒤를 이어 경영 전면에 나서는 데뷔 무대를 한창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자신을 반대하는 노조의 공세에 직면했다. 당시 노조는 그 대표가 처음으로 의사봉을 잡는 주주총회 자리를 D-데이로 잡았다. 2차 파업을 예고하고, 주총 당일 회사 앞과 주주총회장에서 시위를 벌이겠다는 게 노조의 계획이었다.

노조는 임단협에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압박 수단으로 주총장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이런 노조의 대응이 당시 리더로 첫걸음을 떼는 그가 겪었던 첫 시련이자 최대 고민거리 중 하나였다.

해법을 묻는 질문에 "노조위원장 등과 직접 대화를 해봤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전문경영인 CEO와 노무 담당 임원이 대화하고 보고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다. "오늘 돌아가면 노조위원장에게 연락해서, 직접 찾아가서 우선 얘기를 들어보고, 그 얘기 중에 해줄 수 있는 것과 해줄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해줄 수 없는 회사의 이유와 사정을 설명하라"고.

그가 되물었다. "그래도 안되면…". 그러면 한번 더 찾아가라고 했다. 두 번째 찾아가서도 같은 방법으로 듣고, 진솔하게 이해를 구하면 방법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몇 일간 그 일은 잊고 있었는데, 주총 바로 전날, 그 회사 임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임 대표가 노조위원장에게 전화해서 보자고 했더니 위원장이 유례없는 일에 당황했다고 한다. 직접 노조사무실로 찾아가겠다는 대표에게 자신들이 대표실을 방문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대화를 나눈 후에는 주주총회에서의 시위나 농성을 우선 철회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데뷔 무대인 주주총회 의장으로서 일어날 수 있었던 분란을 조용히 잘 마무리한 것이다.

당시 기억으로는 주총이 끝난 후 '고맙다'는 정도의 메시지와 함께 "언제 식사 한번 하자"는 정도의 인사치레가 있었지만, 그 후 그 회사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이 벌어졌고 그와는 다시 본 적이 없다.

그때 느낀 점은 재계 총수들 주변에서 이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보구나라는 것과, 그나마 그 재계 3세는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구나 하는 것이었다.

당시 막 경영 전면에 나섰던 대표가 현재 한진 그룹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 있는 조원태 회장이다.

13세기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대제국을 건설했던 징키스칸은 "못배웠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배우지 못해 글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며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는 12일로 탄생 110주년을 맞는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자도 아들인 이건희 회장을 경영에 참여시킬 때 '경청(傾聽)'과 목계(木鷄)라는 휘호로 적어 간직하도록 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경영자로서 가장 중요한 자세 중 하나로 '귀를 기울이는' 자세와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 회장의 이같은 유지를 잘 이어받아 삼성 그룹을 글로벌 톱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국민들 눈에 한진 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장남인 조원태 회장과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싸우는 모습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면 비행기를 되돌리는 무리한 리더십보다는 경청의 귀를 가진 리더가 바람직해 보인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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