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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언니의 모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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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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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 '모멘트 아케이드' <8회>

⑧언니의 모멘트
당신은 친절했습니다. 답은 기대했던 것만큼 그다지 감동적이지도 않았고 내가 응용해 볼 만한 제안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었어요.

- 제가 당신에게 판매한 경험은 모두 똑같은 순간을 수십 번 때론 수백 번 경험한 이후에 길어 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랍니다. 당신에게 판매하기 전, 저는 같은 순간을 수십 번 반복했어요.

당신은 같은 경험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지나간 순간에 느끼지 못한 감정과 감각을 찾아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각종 희로애락, 소소한 감정들의 경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다 반복해보고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찾아냈다고요. 아름다운 모멘트는 때때로 가장 첫 번째 순간에 찾아오기도 했고,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 가장 나중에 찾아오기도 했고,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오기도 했다고요.

의아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 당신은 시간이 많나 봐요.

놀라운 이야기였지만, 나는 차마 당신처럼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겪은 고통을 수십 수백 번 다시 경험하라고요? 한 번 더 반복하는 것도 싫어요. 엄마와 함께했던 고통스러운 모멘트를 다시 한 번 실행하면서 다른 감정을 내 안에서 찾아보라고요? 그건 고문당하다 죽으란 얘기랑 같은 얘기입니다.

그러자 당신이 제게 제안했어요.

- 같은 시공간에 있었던 다른 사람의 경험을 구매해보세요. 똑같은 순간, 다른 사람은 어떻게 그 순간을 빚어내고 있었는지 조금은 참고가 될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당신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오랜 시간 고민한 뒤 언니에게 연락했어요. 모멘트 아케이드에서 다른 사람의 기억을 대리체험 중이라고 근황을 알렸고 언니의 모멘트를 사고 싶다고 말했어요. 언니도 오랜 시간 고민했고 그동안 고이 저장해 온 자신의 12년의 기억을 제게 복제해서 넘겨주었습니다. 극히 사적인 부분은 잘라냈지만 거의 모든 시간이었어요. 저는 그 시간을 빠른 속도로 재생시켰고 나와 관련된 부분은 정상 속도로 재생시키면서 언니의 삶과 중첩되는 내 삶을 찾아 언니의 눈으로 우리가 함께 통과해 온 모멘트를 더 체험했습니다. 언니의 12년의 삶을 지켜보는 데에 한 달 남짓 시간을 썼습니다.

언니의 모멘트는 지루하더군요. 책과 씨름하는 게 일과였어요. 만나는 사람도 대부분 연구하던 자료를 위한 케이스 스터디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저렇게 재미없는 일상을 한결같이 담담히 이어갈 수 있는지, 언니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엄마가 어린 우리의 양육을 방기했을 때 제 심장은 고장이 나고 말았는데, 언니는 어떤 일에도 좌우되지 않는 잔잔하고 단단한 심장을 얻었나 봐요.

언니의 모멘트 중 저와 가장 관련된 순간은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였어요. 의외였죠.

언니는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을 마쳤는데 몇 편의 논문을 만들었어요. <미주신경 자극과 VR을 결합한 무의식 환자 치료 지원>, <정서 장애 해소에 활용 가능한 모멘트 대리체험자의 경향 분석>, <모멘트 아케이드를 활용한 중증 간병 가족 트라우마 치료> 같은 논문에 참여했고 연구 방식은 실제 현장에서도 적용되었습니다. <의식 불명자들과 모멘트 대리체험자 상호작용> 같은 건 무슨 연구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요. 간병 가족의 트라우마라면 내 얘긴데? 그런 생각만 들었죠. 언니는 그런 논문들을 써 내려가며 어떤 기대감에 꽤 두근거렸어요. 그 기대는 무척 따듯하면서도 슬픈 느낌이었어요.

언니의 모멘트가 점점 최신 경험으로 나열됩니다. 언니는 요즘 매일 '모멘트 아케이드'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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