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확천금의 꿈' 웹소설 작가…어떤 이는 '치킨값'도 못 번다

6일 오후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웹소설 작가 최지은씨(가명)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박준이 기자

#커피 두 잔에 케이크 하나. 10시간을 카페 자리에 앉아있던 최지은씨(가명)의 옆엔 빈 잔이 쌓여갔다. 저녁 식사 겸, 눈칫밥을 덜 겸 주문한 케이크가 나오자 그는 잠시 작업을 멈췄다. 하지만 한 숟갈을 뜨고는 다시 활자로 빽빽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헐렁한 양털 잠바에 츄리닝 바지. 퀭한 눈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감이라 정신이 없네요." 지난 6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지은씨는 5년차에 접어든 웹소설 작가다. 얼마 전 그는 한 출판사와 콘텐츠 계약 맺고 플랫폼 소설 연재에 들어갔다. 바쁜 마감 기간, 카페는 그의 작업실이다.


기자가 지켜보는 내내 지은씨는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곤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로지 흰 화면을 활자로 채우고,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다. 웹소설 어플 화면 사이즈에 맞게 나누어진 창은 텍스트로 가득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채워야 해요." 그는 전날까지 써둔 수십장의 페이지를 보여줬다. 소설 1편당 하루가 꼬박 걸린다고 했다.

'카톡' '카톡' 저녁 9시 무렵이 되자 편집자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왔다. 늦은 시간까지 마감을 독촉하는 출판사의 압박에 지은씨는 괴로워했다. 보통 150편에 달하는 연재 분량을 맞추려면 부단히 일해야 한다. 남들처럼 주5일 일하면 한 달에 20편 정도밖에 완성을 못 하는데, 그러면 마감 기한을 제때 맞출 수 없다. 그래서 '연재모드'에 돌입할 때면 쉬는 날 없이 일한다.
하루 10시간·주 7일 근무…통잔잔고 '0원'

6일 오후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웹소설 작가 최지은씨(가명)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박준이 기자

온종일 카페에서 작업하는 지은씨는 3시간에 한 번씩 음료나 음식을 주문한다. 눈치보지 않을 정도의 '자릿값'이다. 하지만 하루 만원이 훌쩍 넘는 비용은 꽤 부담이다. 대개 연재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정산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은씨는 이날 메뉴판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 5100원짜리 초코케이크를 골랐다.

그는 연재 기간뿐만 아니라 작품을 준비하는 내내 수입 통장 잔고가 '0원'이었다고 털어놨다. 이번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할 때부터 계약을 완료하기까지 총 1년이 걸렸다고 한다. 정산에는 집계되지 않는 '숨은 노동 시간'인 셈이다.


그래서 웹소설 작가들은 상당수 '투잡'을 한다.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나름 잔뼈 굵은 지은씨도 매주 두 번, 저녁부터 새벽까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지은씨는 카페, 주점, 화장품 가게까지 4년 동안 다양한 곳을 전전했다.

하지만 두 일을 병행하긴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일을 하면서 수십 편의 글을 써내는 건 쉽지 않아요. 그만큼 글을 못 쓰니까, 준비 기간만 더 늘어나요." 마음이 급해진 그는 최근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였다.
벌 때까지 '존버'…'치킨값'도 못버는 작가들

6일 오후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웹소설 작가 최지은씨(가명)가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박준이 기자

웹소설 작가는 흔히 '일확천금을 버는 직업군'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화려한 겉모습을 보고 업계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15일 발표한 '플랫폼노동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웹툰·웹소설 노동자는 하루 평균 9.8시간을 일하고 월평균 플랫폼으로 183만원 정도를 번다. 노동 시간 대비 높은 금액이 아닐 뿐더러, 그 안에서 수입 격차도 상당하다.

그나마 지은씨는 '본전'을 찾은 케이스다. 그가 지난번에 연재한 소설은 나름의 수확을 거둔 뒤 안정 궤도에 올랐다. "지난해까진 돈이 없어서 계속 허덕댔어요. 작품 하나 끝내고 나서 겨우 주변에 빚도 갚고, 이제 겨우 살만해졌죠." 지은씨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작가들은 작품의 성패 여부에 따라 수익이 천차만별이다. 작품 한편에 억 단위의 수익을 버는 '대물급' 작가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건 소위 '치킨값'도 못 버는 이들이다. 지은씨는 "저처럼 1년 이상 작품을 준비하고도, 최저생계비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수익이 오를 때까지 대부분 이른바 '존버'(버티기)를 한다고 했다.
플랫폼 노동자의 '당연한 불안정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은씨는 이날 카페 마감 시간이 다 돼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하는 길, 그는 프리랜서로 사는 삶이 불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업체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4대 보험 적용이 안돼요. 또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때도 남들보다 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요." 그는 자신이 선택한 삶이니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프리랜서는 '자유로운 노동'을 택했다는 이유로 삶의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받는다. 많은 이들이 '당연한 게 아니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들 역시 평범한 직장인처럼 하루 10시간, 혹은 그 이상을 일하는 노동자다.

지난 4년 동안 집필에 매진한 결과 그는 '플랫폼 연재'라는 목표를 이뤄냈다. 하지만 다음 작품을 계속 준비할지는 고민이다. "이 일이 좋지만, 조금 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요." 지은씨의 하루는 새벽 늦은 시간까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