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하나'...금감원리스크 확산 우려, 금융권 뭉치나

DLF 사태 책임, 단계 건너뛰고 CEO 겨냥 중징계
누구든 '제2 손태승·함영주 될 수 있다' 인식 확산
"지배구조 혼란에 경영위기 초래, 적법성 시비 가려야"

지난 6일 노성태 우리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왼쪽 두 번째)을 비롯한 이사들이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우리은행지주 이사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우리금융그룹이 지난 6일 손태승 회장 체제를 당분간 유지키로 한 것은 사실상 금융감독원의 중징계에 대해 소송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아직 의사표명을 않고 있지만 같은 사유로 중징계를 받은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전 하나은행장)도 동일한 선택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의사결정은 무리한 제재를 그대로 받아 들일 경우 나쁜 선례를 남길 뿐만 아니라 제2, 3의 손태승·함영주가 나올 수 있다는 금융권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 회장이 연임하려면 금감원을 상대로 한 행정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이 불가피하다. 이사회 이사들도 손 회장에 힘을 실어줬다.

손 회장이 소송으로 맞서게 되면 함 부회장도 자연스럽게 이를 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금감원의 은행장 중징계 내용을 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거의 판박이다.


금감원은 불완전판매의 제재 근거인 자본시장법을 배제하고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지배구조법)’을 준용한 뒤 각사 내부통제 시스템을 획일적으로 바라보고 제재 근거로 삼았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두 은행은 WM(자산관리) 실무자와 관리자, 임원, CEO(은행장)이 존재하고 임원이 이끄는 상품위원회를 거쳐 상품 판매가 결정된다. 금융당국은 이런 직제와 의사결정 과정을 무시한 채 내부통제 부실 책임자로 행장을 직접 겨냥했다. 미리 CEO 제재를 작정하고 징계를 위한 징계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3월21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는 모습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금융권 관계자는 “손 회장과 함 부회장 사례를 보면서 고객 투자 손실이 나면 이를 명분으로 당국이 CEO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다수의 금융회사가 비슷한 문제에 얽혀 있는 만큼 위기감과 함께 동반자 의식도 커졌다”고 말했다.

법적 근거가 취약한데도 CEO를 중징계하기 시작하면 이는 개별 CEO나 금융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각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수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게다가 라임자산운용과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영미 DLF 손실 등이 곧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4월부터 라임 펀드 만기가 도래하는 신한은행, 환매가 연기된 독일 헤리티지 DLS를 3900억원어치 판 신한금융투자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손 회장과 함 부회장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일 수도 있는 셈이다.

중징계를 받은 CEO들이 소송을 벌인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나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 등이 과거 중징계를 받고 행정소송에 나섰다. 모두 개별 대응이었다. 황 전 행장은 승소했지만 KB금융지주 회장을 물러난 뒤였고 임 전 회장은 이사회로부터 쫓겨나면서 소를 취하했다.

이번에는 금감원이 대형 금융회사 여러 곳으로부터 동시에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자신은 빠지고 모든 책임을 CEO들에 떠넘긴 것은 금융회사 위에 군림하던 제왕적 행태의 연장선”이라며 “금융사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법을 초월한 처분에는 시비를 따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