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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기준 없는 '직권남용죄' 법 공백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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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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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권남용 대법 판결, 그 후] (종합)

[편집자주] 직권남용죄 적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 재판들이 잇따르면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적폐'로 몰렸던 고위공직자들들이 잇따라 무죄판결을 받고, 한편에선 여전히 모호한 판단 기준이 새로운 정치 수사, 정치 재판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계기로 직권남용죄를 둘러싼 쟁점들을 정리했다.


'적폐 청산' 만능키가 면죄부 제조기로…'직권남용죄'의 변신


대법 직권남용 엄격 해석, 사법농단 잇따라 무죄판결'…양승태·박근혜 재판도 영향권

[MT리포트] 기준 없는 '직권남용죄' 법 공백 키운다


현 정부의 적폐수사에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했던 직권남용 혐의가 고위 공직자들의 무리한 영향력 행사에 면죄부를 안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현 정부 핵심인사들은 물론 전직 사법부 수장까지 피고인석에 세운 죄목인 '직권남용죄'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달아 나오면서다. 지난달 대법원 전원합의부가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엄격하게 하는 판결을 내린 것을 전후한 변화다. 여전히 모호한 직권남용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하지 않을 경우 수사와 재판에 대한 공정성 시비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8일 대법원에 따르면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직권남용죄)로 기소돼 지난해 3월부터 재판 업무에서 배제됐던 현직 법관 8명 중 7명이 1년만인 다음달부터 재판 업무에 복귀한다. 임성근(56·사법연수원 17기)·이민걸(59·17기)·신광렬(55·19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조의연(54·24기)·성창호(48·25기)·방창현(47·28기) 부장판사, 심상철(63·12기) 수원지법 성남지원 광주시법원 원로법관 등이 사법연수원 발령 전 소속 법원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모두 법정에서 '무죄 판결' 받았다.

이들의 무죄판결은 법조계에선 사실상 '예견된 결과'였다. 지난달 9일 대법원이 내놓은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직권남용 혐의 무죄 판단이 전조였다면, 같은 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은 쐐기를 박은 셈이었다.

당시 법조계에선 이번에야말로 직권남용죄의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나올거라며 기대가 컸다. 하지만 대법원은 하급자가 공무원이거나 공공기관 임직원일 경우, 직권에 대응해 일을 한 것이 진정 '의무없는 일'인지 여부는 관련 법령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직권이나 직위 혹은 남용에 대한 직접적인 해석은 없었다.

대신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일부를 제외하고 무죄를 선고 함으로써 직권남용 판단을 최대한 엄격하게 해석했다. 김 전 실장 지시로 문화예술단체 직원들이 한 여러가지 지원배제 관련 업무는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행위'에 해당돼 유지로 판결했지만 각종 명단을 송부하고, 수시로 진행상황을 보고한 것은 사실상 기존에도 공무원으로서 늘상 하던 업무로 죄고 없다고 판단한 것. 그러면서 이 '의무에 없는 일'은 구체적 법령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대법 판단이 직권남용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함에 따라 도미노처럼 대기중이던 직권남용 관련 사건들에 대한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3일 신광렬 등 현직판사 3명에 이어 임성근 전 부장판사도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았고, 같은날 강원랜드 채용비리 혐의를 받은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도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농단 무죄 판결은 더 큰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사법농단 1심 논리대로라면 사법행정사무 총괄자로서 강제징용 및 통합진보당 재판에 개입했다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혐의도 처벌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재판 보이콧'을 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에도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대법 전합 판단에 따라) 직권남용 부분을 다시 봐야 한다"며 재판을 돌연 연기했다.

검찰은 법원의 '셀프 무죄' 판결에 "법리를 오판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지만, 법조계에서는 향후 검찰의 직권남용죄 기소가 보다 신중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대법원이 직권남용에 대한 더욱 엄격한 판단을 요구하긴 했지만 개별판단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으므로써 혼란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실제로 잇따른 직권남용죄 무죄 판결 속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의 댓글 여론공작을 총 지휘한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과 '비선실세'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 등 관련 행위가 '권한 밖의 일'이라는 것이 뚜렷해 보이는 일부 사건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직권남용죄 판단은 공무원 조직에도 영향을 미친다. 말 그대로 '직권남용죄를 남용'하면 공무원 조직은 얼어붙고, 반대의 경우 공무원들이 자의적으로 직무를 행사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직권남용 기준이 불분명할 경우 사회적 갈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부가 직권남용의 가이드라인을 보다 구체화해야한다는 요구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미호, 김종훈, 안채원 기자



그래서 기준이 뭔데?…직권남용 판단 변천사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고소·고발건 '급증'

직권남용죄 관련 법조문./그래픽=이지혜 디자인 기자
직권남용죄 관련 법조문./그래픽=이지혜 디자인 기자


직권남용죄는 형법 제123조에 규정돼 있다. 대상자는 공무원이다.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의 행사를 방해한 때에 해당한다. 이 법을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직권남용죄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직권'이나 '남용'이라는 표현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직권이란 공무원이 가진 직무상 권한을 뜻한다. 즉 공무원이 자신의 직무상 권한을 일정 한도를 넘어 함부로 쓰게 되면 직권남용죄를 저지른 것이 된다.

문제는 공무원의 직무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남용이라고 볼 수 있는 행위의 기준은 어느 선부터인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직권남용죄가 성립되려면 검사는 ①공무원인 피고인이 해당 위법 행위를 할 수 있는 '직권'을 애초에 가지고 있었고 ②그가 이를 남용해 ③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피고인의 재판에선 검사와 변호인 측이 '직무권한 범위'를 두고 다투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설사 옳지 않은 일을 피고인이 했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피고인이 그 직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직권남용죄는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판례로 본 직권남용죄

직권남용죄 인정 기준의 '모호함'은 대법원 판례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대법원은 지난 1월9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법무부 감찰국장에 대해 원심이 선고한 징역 2년을 깨고 무죄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그는 서지현 검사를 일부러 험지에 발령내도록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대법원은 "관련 법령 내용에 따르면 검사 전보인사에서 인사권자의 직무집행을 보좌하는 실무 담당자는 여러 인사기준과 고려사항을 종합해 인사안을 작성할 재량이 있고, 이 사건 인사안은 그러한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인사 담당 검사가 이 사건 인사안을 작성하게 한 것을 두고 법령에서 정한 검사 인사 원칙과 기준을 위반해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2015년 비슷한 사건에서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한 지방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인사평가를 조작해 승진대상자를 조정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의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법령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해야 함에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승진 후보자 명부 중 상위 순위의 승진 대상자를 사전에 지정했고, 인사담당자들은 평정 대상자에 대한 점수와 순위를 임의로 부여해 승진 후보자 명부를 작성한 후 마치 근무성적평정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열린 것처럼 관련 서류를 만들어 위원들의 서명을 일괄해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는 직권을 남용하고, 인사팀장들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급증한 직권남용?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관련 고소, 고발 현황./통계 제공=대검찰청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관련 고소, 고발 현황./통계 제공=대검찰청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실제로 직권남용과 관련한 고소·고발 접수 건수는 늘어났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이후 검찰에 접수된 직권남용 관련 고소·고발 건수는 꾸준히 증가했다. 2016년 4553건에 불과했던 접수 건수는 2016년 9116건으로 늘어났고, 2018년 1만3738건을 넘어서 지난해에는 총 1만6768건이 접수됐다.

여기에는 문 정부에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현직 법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직권남용 혐의를 받은 영향이 크다. 고위 공직자들이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사례가 늘어나자, 그 적용 범위가 넓다는 측면에서 공무원이 무언가 위법한 행위를 했다고 느끼면 일반 고소.고발인들도 직권남용죄부터 꺼내보기 시작했단 것이다. 직권남용죄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란 비판을 받는 이유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기준 제시 기대했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30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블랙리스트 사건' 상고심 판결문을 통해 직권남용죄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판결문에 따르면 대법원은 "일방이 상대방 요청을 청취하고자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협조하는 등 요청에 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공무원이) 법령 등에 따라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이나 기준, 절차 등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부분을 법조계는 대법원에서 직권남용죄에 대해 보다 엄격한 적용 기준을 제시했다고 본다.

대법원은 또 직권남용죄 성립에 있어 '상급자의 직권남용'과 '하급자의 의무 없는 일 수행'이 모두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두 가지 요소 중 한 가지만 있다만 유죄 인정이 불가하단 이야기다. 이 기준대로라면 상급자가 직권을 남용했어도 하급자의 실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처벌은 어렵다.

하지만 이 판결로는 매번 논란의 대상이 되는 '직권남용죄'의 모호함을 해소할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세한 내용들을 일부 판단하긴 했지만, 어떤 행위가 직권 남용인지 대한 판단이 나뉘는 직권남용 적용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직권남용에 대한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특별한 게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일반적인 말을 써놓은 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너무 추상적인 법조문을 구체화하는 게 그만큼 어려운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죄라는 건 도덕과 다르다는 점을 늘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도덕적으로 비판 받는 사람이라도 분명한 위법 행위가 없었다면 무죄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안채원 기자



"혹시 직권남용?" 모호한 해석에 공무원들 떤다


14년째 이어진 직권남용 모호성 논란, 입법으로 해결 봐야

[MT리포트] 기준 없는 '직권남용죄' 법 공백 키운다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56·사법연수원 17기)의 재판개입 행위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이 논란이다. "위헌적 행위이지만 범죄는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불씨였다. 법률에 따라 당연한 결론에 이른 것이라는 의견과 판사들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비난 사이 공방이 뜨겁다.

논란의 원인은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의 모호성이다. 직권남용죄는 직권 없이 남용 없다는 공식을 따른다. 검찰은 이 공식이 임 부장판사 사건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판사에게 판결문 내용 일부를 고쳐쓰라고 지시하고, 약식사건 정식재판 회부를 취소하게 한 것은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사법행정권에 기댄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달랐다.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직권에 '재판관여'는 포함돼있지 않으므로 직권남용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검찰은 "직권이 남용된 결과를 남용된 직권 그 자체와 혼동한 판결"이라며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고위 공무원들 수사 위험 부르는 직권의 모호성

'직권'의 기준이 무엇이길래 이런 논쟁이 붙었을까? 대법원은 법령에 적힌 권한은 물론, "명문이 없는 경우라도 법·제도를 종합적, 실질적으로 관찰해서 그것이 해당 공무원의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해석"되면 그것도 직권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권한에 대한 명문이 없는 경우'는 예를 들자면 상급자로부터 위임, 명령을 받아 일시적인 권한을 행사하게 된 경우 등을 뜻한다. 법 규정 없이 실무적으로 이뤄지는 일인 만큼 직권인지 월권인지 애매한 회색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회색지대에서 공무원은 수사 위험성에 노출된다. 예를 들면 공무원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상대방 또는 제3자가 직권 행사로 받아들여 직권남용 피해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법정에서 혐의를 벗는다고 해도 지난한 수사와 재판을 거쳐야 한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직권을 행사하는 고위 공무원일수록 이런 위험에 더 노출돼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남용의 모호성

그 다음은 '남용'이다. 남용은 공무원의 직권이 올바르게 행사됐느냐를 따져 판단한다. 문제는 누가, 언제 판단하느냐에 따라 판단 결과가 뒤집히기 쉽다는 것이다. 박상옥 대법관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한 소수의견에 이 문제가 잘 나타나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박근혜정부가 정부 비판 성향 문화·예술인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했다는 내용이다. 다수의견은 박근혜정부가 헌법에 보장된 문화다양성을 파괴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으므로 범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대법관은 "구체적인 금지규범을 특정하지 않은 채 추상적인 헌법원리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돼 죄형법정주의가 전면적으로 형해화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누구나 남용의 모호성을 파고들어 정무적 실수, 정책 실패를 권력남용 범죄로 몰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도 남용 모호성의 위험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우 전 수석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우 전 수석의 감찰을 받고 좌천됐던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이 직권남용 피해자를 자처했다. 검찰은 이들 진술을 토대로 직권남용 혐의를 구성했지만, 1심 재판 결과 감찰은 정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4년 전 예견된 '숙청 도구화' 논란, 입법으로 '선택' 내려야

직권남용죄의 모호성 논란은 14년 전 예견된 일이다. 2006년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이 직권남용죄 조문은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며 제기한 위헌법률심판에서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은 직권남용죄가 모호하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권성 당시 헌법재판관의 의견은 달랐다.

권 재판관은 직권남용의 의미에 대해 "모호하고 광범위하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법원의 해석 역시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할 뿐"이라며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권교체의 경우에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거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에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에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거의 사문화돼 있던 직권남용죄가 '적폐청산' 구호와 함께 살아났다는 사실과 맞아떨어지는 판단이다.

"법의 공백"이라는 한 부장판사의 말처럼, 직권남용죄의 모호성을 해결하려면 입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이다. 직권과 월권 사이 경계와 남용의 해석 기준을 입법부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의 직권과 남용을 명확히 정의해 조문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법적 혼란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경계선은 그어야 한다는 취지다.

여기서 현대사회에서 공적 영역이 날로 확대된다는 점을 감안해 직권남용 범위를 넓힐지, 아니면 공무원의 판단력과 자율성을 존중해 직권남용 범위를 좁힐지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모호한 상황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 주의를 부추길 뿐이라는 것이 법조계 진단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직권남용의 틀을 잡아야 할 시기가 됐다"고 했다.

김종훈 기자



양승태·박근혜·조국…'직권남용 재판' 본게임 돌입


사법 수뇌부도 면죄판결 가능성 커

[MT리포트] 기준 없는 '직권남용죄' 법 공백 키운다



직권남용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지금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물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현 정부 고위 인사까지 '굵직한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오는 21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3·사법연수원 12기)·고영한(65·11기) 전 법원행정처장의 재판이 두달만에 재개된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 40여개의 대부분이 직권남용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해당 재판의 결과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직무유기·위계공무집행방해·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혐의 모두가 무죄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직권남용이 적용된 혐의 상당 부분은 '면죄 판결'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양 전 대법원장이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 통진당 해산 사건 처리에 개입하고, 개혁적 성향의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인사 불이익을 주고 하급자인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하여금 문건 작성이라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거다.

하지만 앞서 법원은 전·현직 판사들 재판에서 "행위는 위헌적이지만 직권남용으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상급자)개입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장들이 독립적인 판단을 했다며 인과관계도 인정하지 않았다.

여권 등 정치권 일각에선 법관 탄핵이나 대법원 징계로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하지만, 탄핵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받아야 하고 징계수위도 현직 법관에 한해 최대 1년(정직)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결국 '제식구 감싸기'라는 여론의 비판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공무원에 대해 행정법상 징계를 해야 하는 일이 사법의 영역으로 넘어왔다"면서 "직권은 아닌데 개입한 부분을 벌하지 못하는 건 '법의 공백'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죄는 도덕과는 다른데 우리 사회가 이에 익숙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및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파기환송심 재판도 대법원 전합 판결 여파로 연기됐다. 재판부는 지난달 31일 "직권남용죄에 대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3월 25일로 다음 기일을 잡았다.

청와대 관계자들을 시켜 다스 관련 소송을 챙기게 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오는 19일에 항소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직권남용죄로 기소된 조 전 법무부 장관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장관은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에 대해 일관되게 "특감반원에 대한 민정수석의 업무지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공직 내 상·하급자간의 업무지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권남용 성립이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이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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