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구해요" 구인난 시달리는 中企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둔 상장사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떠오른 것이 사외이사 구인 문제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 회사에서 근무 할 수 있는 사외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계열사까지 포함해도 9년을 초과해서 근무할 수 없도록 정했다. 사외이사가 기업 총수 등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온 탓이다. 당 초 경제단체 등의 요구로 1년 유예가 검토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장 올해부터 적용에 들어간다.


21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사외이사 재직 연한 제한으로 올해 새로운 사외이사 후보자를 영입해야 하는 상장사는 최소 566곳(코스피 233곳·코스닥 333곳)으로 교체대상이 되는 사외이사는 718명(코스피 311명·코스닥 407명)에 달한다.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 상장사의 80% 이상이 중소·중견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짧은 기간 안에 새롭게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제도 취지를 이해하지만, 급하게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영활동에 대한 감시와 조언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게 하기 위해선 제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사회 안건에 반대한 비율 0.3%

사외이사 제도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경영진과 총수 등 지배주주로부터 독립돼 회사의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장기간 재직하면서 이사회 안건에 한차례도 반대하지 않은 사외이사들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제도의 실효성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 대상 대기업집단 250개 상장사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18년 5월부터 1년간 이 회사들의 이사회 안건 6722개 중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24건(0.4%)에 불과했다.


상장사는 반드시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자산총액 2조원이 넘는 상장법인은 사외이사를 3명 이상으로 선임해야 하고 이사 총수의 과반수 조건도 충족시켜야 한다. 이를 충족하지 않으면 관리종목 지정 또는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 사외이사는 또 자신의 회사를 제외한 2개 이상의 다른 회사 이사나 감사 등을 겸직할 수 있다.

장윤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한 회사에 오래 있다보면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고 독립적인 시각을 갖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이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임기에 대한 규제는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업계 현실 고려 안 한 처사”


문제는 사외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 상장사의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이라는 점이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인력풀이 충분한 대기업에 비해 우리는 사외이사 한 명을 뽑을 때도 상당한 고생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도 개선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개정안을 강행하는 것은 업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처사라는 목소리가 높다.

박한성 상장회사협의회 선임연구원은 “신규 선임을 하려해도 인력풀이 작은 것이 현실”이라며 “시간이 확보됐더라면 미리 준비를 했을텐데 주주총회 준비가 한창인 지금 각 상장사들의 혼란이 매우 클 것”이라고 밝혔다.

상장회사협의회는 ‘사외이사 인력뱅크’를 통해 경영인, 교수, 변호사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인재풀을 운영하고 있다. 20일 기준 총 등록인원은 1524명이다. 코스닥협회도 ‘코스닥 인력뱅크’를 구축해 상장사들의 인재 영입을 돕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적당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상장사 경영에 의견을 제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다. 업종의 특성을 충실히 이해하고 사외이사의 업무를 파악하는 데에는 6년도 짧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시장 지배력이 몇몇 기업에 매우 집중돼 있고 대기업집단 몇 곳이 상장사 상당수를 가지고 있는 구조”라며 “그렇게 힘이 센 곳들이 사외이사를 먼저 선점해서 데려가다 보면 남은 인력들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상장회사협의회의 다른 관계자는 “짧은 기간 안에 사외이사를 구하다보면 후보자를 검증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며 “경영활동에 대한 감시를 내실화하려는 방안이 오히려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