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에 담보로 제공한 동산 처분했어도 배임죄 아냐"(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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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한 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했어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채권자에게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이를 무단 매각한 경우 배임죄를 인정해 처벌했던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0일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권모씨(58)에게 징역1년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골재도소매 회사를 운영하는 권씨는 골재생산기기 '크라샤'를 구입하기 위해 2015년 12월 중소기업은행에서 1억5000만원을 대출받으면서, 대출금을 다 갚을때까지 크라샤를 양도담보로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권씨는 2016년 3월 크라샤 중 일부를 A상사에 5500만원에 팔고, 같은달 나머지 중 일부를 B씨에게 1억원에 팔아 은행에 손해를 입힌 혐의(배임)로 기소됐다.

권씨는 2016년 10월초 최모씨에게 '덤프트럭 등 회사 장비에 대한 가압류를 해제해주면 8500만원을 주겠다'고 속여 빚을 갚지 않고 가압류를 해제해 가압류청구금액 1억1500만원의 재산상 이득을 취한 혐의(사기)도 받았다.

앞서 1심은 양도담보에 제공한 동산을 보관하지 않고 판 경우 배임죄 성립을 인정하는 기존 판례에 따라 권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권씨가 피해금액을 일부 갚고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을 고려해 징역 1년 10개월로 감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배임죄에 대해 엄격한 판단기준을 적용해 판례를 변경했다.

재판부는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는 신분이 필요한데, 금전채무를 갚는 것은 어디까지나 채무자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일뿐, 타인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형법 제355조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를 위배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어 "담보권 설정계약을 맺었더라도 '채권의 실현'이라는 당사자 관계의 본질적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며 "담보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채무자가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자가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재형·김선수 대법관은 "해당 사안에는 배임죄가 아닌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원심에서 횡령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반면, 민유숙 대법관은 "채권자가 양도담보권을 취득한 이후에는 채무자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다수의견은 부동산 이중매매에 관한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하므로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앞서 2018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배임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부동산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가 있다"며 "중도금이 지급되는 등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에 이른때에는 매도인은 '타인(매수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면서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바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배임죄의 행위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사무의 본질에 입각해 엄격하게 제한해석한 판결"이라며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 ‘담보가치를 유지할 의무 등이 있다’는 이유로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 종래 판례를 변경했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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