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운용성과 나쁘면 수수료 조금만 낸다

임종철 디자이너 /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앞으로 퇴직연금 가입자는 적립금을 잘 운용하지 못해 수익이 저조한 사업자에 수수료를 적게 낼 수 있다. 정부가 가입자는 수익 성과를 얻지 못하고 퇴직연금사업자(이하 사업자)만 수수료 이익을 챙긴다는 지적을 반영, 손질에 나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이 같은 내용의 '퇴직연금 수수료 산정체계 합리화 방안'을 마련·추진한다고 밝혔다.

퇴직연금은 사업체가 가입하는 DB(확정급여)형, DC(확정기여)형과 개인이 가입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로 구성된다. DB형은 기업이 운용 수익을 갖는 대신 노동자에게 사전 약속된 퇴직금을 보장해준다. 반면 DC형은 노동자가 상품을 선택해 투자하고 운용 성과에 따라 퇴직금이 결정된다.

적립금 유치만 열 올린 사업자…대기업만 수수료 혜택퇴직연금 수수료율이 최종 연금수령액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가입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수수료 부과 기준은 비합리적으로 책정됐다. 사업자는 서비스의 질이나 운용 성과와 관계없는 적립금 규모로 수수료율을 부과했다.

사업자는 고수익 상품을 발굴하거나 돈을 잘 굴리려는 노력 대신 적립금 유치에만 열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가입자 중에서도 적립금을 많이 넣는 대기업이 수수료 혜택을 중소기업보다 더 받았다.


고용부는 우선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 내용에 따라 수수료 부과 기준을 달리하도록 산정체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원리금보장상품과 실적배당상품 간 수수료율을 차등 적용하는 식이다.

또 새로 도입을 추진하는 사전지정운용(디폴트옵션) 및 투자일임제도는 수수료 부과 기준을 수익 성과에 연동할 예정이다. 사전지정운용은 가입자가 상품을 선택하지 않으면 사용자가 미리 찍어둔 적격상품에 자동 가입되는 상품이다. 투자일임은 사업자가 운용권한을 위임받아 알아서 연금을 굴려주는 제도다. 사업자 권한이 큰 제도인 만큼 수익과 수수료율을 직접 연계시킨다는 구상이다.



수수료·수익 연동, 중소기업 수수료 부담 경감중소·영세기업의 수수료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재 사업자가 제시하는 퇴직연금 수수료 부과구간은 잘게 나눠졌다. 한 시중은행은 수수료 부과구간이 9개다. 적립금 규모가 큰 대기업은 많은 선택지를 놓고 협상력을 높여 더 낮은 수수료율을 적용 받고 있다.

고용부는 협상력이 뒤처지는 중소·영세기업을 위해 수수료 부과 구간을 축소하기로 했다. 또 사전지정운용을 활용할 경우 수수료 구간을 1개만 둘 예정이다. IRP 가입자는 가입기간이 길수록 수수료 할인 혜택을 더 받도록 유도하겠다고 했다. 고용부는 또 적립금, 가입기간 등을 입력하면 사업자별 수수료율을 비교할 수 있도록 공시 시스템을 개선할 방침이다.

이번 수수료 산정체계 합리화 방안은 관련 내용을 담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다만 고용부는 법령 개정이 늦어질 경우 올해 상반기 사업자 평가지표에 수수료 산정기준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개편했는지 등을 반영할 계획이다.

김대환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관은 "노동자의 노후소득 재원을 늘리기 위해 퇴직연금 수수료를 합리적으로 정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며 "이번 퇴직연금 수수료 산정체계 합리화 방안 시행을 계기로 퇴직연금사업자가 서비스 질과 수익률 제고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