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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오스카상의 로컬과 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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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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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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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의 아포리아]오스카상의 로컬과 보편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ἄ)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ς)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아카데미 시상식과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세계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고 우리 또한 세계 체제에 깊숙이 편입됐음을 실감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계와 우리 사이에 물리적 거리는 사실상 없으며 오히려 문제는 우리 의식 속에서 재생산되는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이다. 우리 안의 중심과 우리 안의 세계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10월 미국 매체 벌처와 인터뷰에서 “그동안 오스카상을 받지 못한 것은 이상하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오스카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라 매우 로컬(local)한 영화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자유주의자의 언어로 오늘날 지구적 문제가 된 양극화의 모순과 사회·경제적 갈등의 심화를 고발하면서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를 통해 “국가 공권력을 조롱하고 사회 불만세력의 행동을 부추기는” 전형적 예술인의 자세를 보여왔다. 스스로의 문제를 직접 보지 못하고 서구인들에 의해 주어진 프리즘을 통해 자신을 우회해서 보는 비주체적인 태도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다면 봉 감독은 이 모든 것을 뒤바꾸어 원래 자신이 주인이었던 것처럼 아카데미 무대에 섰다.
 
서구중심주의란 서구의 문명이 인류역사에서 도달한 가장 높은 단계의 문명이며 이 문명은 세계의 어느 지역에나 적용 가능한 보편적 생활양식이고, 따라서 누구든지 근대화하고 싶다면 유일하게 검증된 서구화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뤄졌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이 계몽이란 이름 아래 때론 야만적 폭력을 동반해왔음을 익히 알고 있다. 이에 반해 다문화주의는 서구에 저항하는 지역의 거점을 구축하고 단일한 기준에 의한 문화의 비교불가능성을 주장하며 서로 다른 문화의 평행한 공존을 지지한다. 물론 다문화주의는 혼종의 거부를 통해 얻은 고립된 장에서 ‘스스로 선택한 인종분리’를 실천한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인간은 사물도 순수의식도 아닌 의식과 몸의 통일체다. 따라서 세계 내의 존재로서 몸과 생활세계의 상호주관성으로 인해 인간의 자유는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결국 공동체를 떠난 인간의 존재는 불가능하며 모든 공동체가 하나의 지역을 이루고 그 지역들은 대화와 교류를 통해 합의 가능한 보편을 찾아낸다. 애초 보편은 서구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지역 사이의 대화로 발견되는 것이다.
 
지구화는 한편으로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는 노동과 자본의 영향 아래 개인을 고립되고 무능한 소비자라는 보편적 종족으로 바꿔왔다. 시민이 탈정치화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한 곳에서 사람들은 차이에 노출될수록 정체성의 정치를 지지하고 분리주의를 주장하는 다양성의 모순에 빠져든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집단의 유입으로 인해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대화와 교류를 통해 더 크고 넓은 정체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봉 감독의 오스카상 수상은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한 개인이 영화라는 공통의 언어를 통해 고립과 분리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우리 안의 세계를 재구성함으로써 세계의 보편성을 구성하는데 기여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바꿔 말해 이러한 성취는 중심과 주변의 물리적 거리와 이분법을 극복하고 세계의 모든 지역은 단지 지역으로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지역 사이의 대화를 통해 보편의 가능성을 탐색해온 개인들의 뛰어난 성취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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