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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부인이 아닌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 박봉성(공연 평론가)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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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8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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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퀴리'가 담은 위인의 빛과 그늘

사진제공=라이브(주)
사진제공=라이브(주)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 중 여성을 대상으로 한 위인전은 많지 않았다. 그 몇 안 되는 여성 중 하나가 퀴리 부인이다.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이자, 소르본 대학 최초 여자 교수였던 위대한 과학자인 마리 퀴리. 19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마리 퀴리보다 퀴리 부인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위인으로 인정하면서도 남편의 성을 내세운 퀴리 부인을 위인전 제목으로 붙였던 것이다. 이 부당한 처사는 역설적으로 그의 삶을 명징하고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성실한 리서치와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마리 퀴리가 걸어온 삶을 재구성한다. 위대한 과학적 성취보다는 폴란드 출신의 소녀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퀴리 부인이 아닌 마리 퀴리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폴란드 출신의 마리 스클로도프크카가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가는 열차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르본 대학은 당시 유럽에서 여학생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대학이었다. 열차에서 마리는 프랑스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고국 폴란드를 떠나는 안느 코발스키를 만난다. 서로 다른 꿈을 지녔지만 마음이 통했던 둘은 금세 친구가 된다. 마리는 안느에게 주기율표의 빈자리를 채워 넣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여자이든 이민자이든 원소를 발견한 사람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남자들의 그늘에 가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마리에게 원소의 이름을 부여하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마리는 자신이 발견한 두 원소에 폴로늄과 라듐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폴로늄은 조국인 폴란드에서 따오고, 라듐은 스스로 빛나는 물질이라는 의미에서 붙인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마리의 존재를 드러나게 해준 라듐은 마리를 은유하기도 한다. 2막 마지막 곡 ‘또 다른 이름’에서 마리는 “라듐 그건 나”라고 절규하며 라듐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남편과의 공동 수상이긴 하지만 여성으로 최초로 노벨상을 안겨준 라듐은 폴란드의 이름 없는 여인으로 남겨질 수 있던 마리 퀴리에게 기회를 안겨준 빛이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라듐은 방사능을 방출하는 위험한 물질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스스로 빛을 내는 신기한 발명품은 치약이나 신비스러운 느낌 때문에 립스틱이나 매니큐어로 사용되었다. 심지어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던 라듐은 식수에 섞어 마시기도 했다. 야간에도 볼 수 있도록 시계판 숫자에 라듐을 바르는 작업을 하던 여공들이 하나둘 의문의 죽음을 맞으면서 라듐의 위험성이 드러나게 된다. 뮤지컬은 마리와 같이 꿈을 꾸며 고국을 떠나온 가상의 인물 안느 코발스키를 라듐의 피해자이자 그 피해를 고발하는 노동자의 역할에 둔다. 마리의 지지자인 안느를 마리의 공격자의 위치에 둠으로써 복합적인 관계와 갈등을 만들어낸다.


사진제공=라이브(주)
사진제공=라이브(주)



라듐이 치명적인 위험을 주는 물질이라는 증거들이 하나둘 나타나면서 마리의 위치를 위협한다. 동시에 적절히 사용하면 의학적으로 암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알아낸다. 마리는 위험성을 알면서도 후자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과학의 윤리 문제와 차별이 심한 남성 중심 시대에 여성 과학자의 자아실현이라는 주제를 결합해 이야기한다. 작품에서 노벨상 시상식 장면은 당시 여성 과학자 마리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준다. 작품에서 주도적으로 실험을 이끌고 연구하는 것은 마리이지만 피에르가 노벨상 연단에 올라 상을 받고 연설을 한다. 마리는 피에르의 소개를 받고 나서야 연단에 오르게 된다.

마리는 라듐의 해악성을 인정하고 포기하는 대신 라듐의 이로움을 확장시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자신의 믿음을 관철시켰지만 마리 퀴리는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며, 친구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연구 업적이 아닌 딸과 그 뒤를 이은 여성 과학자들, 그리고 그가 낫게 해준 환자들이 마리를 인정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한다. 자아실현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이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인식 전환으로 마무리하는 것과 달리 뮤지컬 '마리 퀴리'는 관계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많은 과학적 업적과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퀴리 부인은 마리 스크로도프스카 퀴리라는 온전한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


박봉성(공연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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