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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가사쟁이가 쓴 ‘가사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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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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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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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이 한 줄의 가사’…한국 대중음악사의 빛나는 문장들

유려한 가사쟁이가 쓴 ‘가사 비평’
‘긴 꿈이었을까 저 아득한 세월이/거친 바람 속을 참 오래도 걸었네/긴 꿈이었다면 덧없게도 잊힐까/대답 없는 길을 나 외롭게 걸어왔네’(최백호 ‘길 위에서’ 중)

‘어린 꿈이 놀던 들판을 지나/아지랑이 피던 동산을 넘어/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멀리 돌고 돌아 그곳에’(정미조 ‘귀로’ 중에서)

이 노래를 듣고 ‘시상적 감흥’이 ‘인생의 각성’으로 다가온 것은 전적으로 가사 때문이었다. 시보다 재미 위주의 어지러운 요즘 가사들 앞에서 알 수 없는 의성어로 대충 흥얼대던 노래를 대하던 태도도 이런 가사가 나타나기 전까진 바뀌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사가 노래에서 얼마나 중요한 힘과 태도, 철학과 가치를 지니는지 작사가이자 음반 제작자인 저자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된 것도 동시대 행운이다.

최백호, 윤시내, 정미조 등 우리 시대 가창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가사 한 줄에 흠칫 놀라며 속지를 뒤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세히 뒤적여야 겨우 찾을 수 있는 저자의 이름은 음반에서조차 쉽게 드러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저자가 내놓은 이 책은 자신을 무대 주인공으로 삼지 않는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보석 같은 가사들을 비평 형식으로 깨알 같이 써내려갔다. 작사가로서 본 ‘작사의 미학’에 대한 탐구서인 셈이다.

송창식이 노래하고 최인호가 작사한 ‘고래사냥’ 편에선 ‘고래’를 새로운 삶이 열리는 곳으로, ‘동해 바다’를 세상의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장소로 상징한다. 저자는 이 노래가 우리 가요의 메타포를 처음 끌어들였다는 평가와 함께 70년대 군부 독재 하에서 숨죽이던 청춘의 해방을 그렸다는 사회적 맥락도 짚는다.

이념과 도덕적 엄숙주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의 시대를 예고하는 뜨거운 외침의 가사는 들국화의 ‘행진’에서 찾는다. 송골매의 ‘모여라’를 두고선 90년대 개발도상국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근면의 세계에 던지는 유쾌한 돌팔매질이라고 평가하고, 혁오의 ‘톰보이’(TOMBOY)에선 시대에 저당 잡히고 행복과 자아실현은 기약 없는 청춘의 신산한 삶을 읽는다.

빼놓을 수 없는 ‘가사 천재’들의 얘기도 실렸다. 한과 토착 정서의 독보적 장인 정태춘, 운문의 시대를 증언한 뮤지션 조동진, ‘믿음의 나라로 들어가 예술의 문을 걸어 잠근’ 하덕규 등 한 줄의 비평만으로 무릎 칠만한 뮤지션의 핵심 키워드가 날카롭게 배어있다.

책의 ‘수록 앨범’ 편에선 음악가들의 창작 활동에 영향을 준 인물들, 음반의 제작 배경이나 에피소드, 음악인과 맺은 인연 등이 담겨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

책을 읽고 접을 땐 저자 자신의 가사 얘기, 무엇보다 그리움에 사무치고 억누르는 슬픔 속에 더 토해내고 싶은 슬픔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듣고 싶어질 것이다.

◇이 한 줄의 가사=이주엽 지음. 열린책들 펴냄. 272쪽/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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