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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외계인이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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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9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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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소도시에서 경험한 일이다. 내가 머물던 카운티의 취수장에 문제가 생겼다. 물 고갈을 우려해 공공기관은 모두 문을 닫고 학교도 학생들을 일찍 집에 보내는 조치가 내려졌다.

시에서는 마시는 물은 물론 화장실 물까지 생수를 구매해 이용할 것을 당부하는 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반복해서 보냈다. 마트의 생수 코너는 금세 비워졌다. 취수장이 언제 복구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불안이 고조됐다.

이 때 이 지역의 대형마트 가운데 하나인 ‘해리스티터’라는 곳이 나섰다. 주민들에게 생수를 무상으로 나눠주겠다는 것이었다. 지자체는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알렸다.

저녁 9시쯤 물을 받으러 갔을 때 시의 경찰관들이 나와 주민들에게 1인당 1갤런짜리 물병 3개가 든 박스를 나눠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생수 값이 급등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도 물 때문에 고통받는 일 없이 취수장 사태는 넘어갔다.

코로나19 시국에 벌어지고 있는 ‘마스크 대란’을 바라보며 떠올린 일이다. 국내에서 하루 생산하는 마스크는 1000만 개다. 5000만 명이 하루 하나씩 써야 한다면 부족하지만 필요한 사람만 쓴다면 ‘대란’을 부를 만큼 적지도 않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시점에 일부 유통업자들이 가격을 급격히 올리면서 공포를 부채질했고, 더 오르기 전에 쟁여놔야 한다는 수요가 몰리면서 누구도 구할 수 없는 ‘금스크’가 됐다.

뒤늦게 정부가 개입해 마스크 생산량의 80%를 공적 통로로 보급하고 ‘마스크 구매 5부제’를 실시하며 수습하고는 있지만 불신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스크 수출을 금지하고 촘촘한 수급 방안을 짜지 못한 정부에게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위기 상황에서 해리스티터같은 이들은 적고, 한 몫 챙기려는 이는 많은 게 우리의 민낯이라 씁쓸하다.

정부와 기업이 협조해 마스크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없을 거라는 신호를 국민에게 줬더라면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해리스티터가 자선기관이라서 공짜 물을 나눠준 것은 아니다. 공동체에 협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합리적인 판단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왔을 것이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누구도 배반하지 않고 협력할 때 이득의 합이 가장 크다. 우리 사회는 정부도, 기업도, 개인도 관계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 사회에 협력이 가능한 이유로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을 제시했다. 상대의 배반은 배반으로, 협력은 협력으로 되갚아 주면 상대방이 나의 전략을 예상하고 행동할 것이기 때문에 협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죄수의 딜레마’에서 공동의 이익 극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코로나19 시국이 고통스럽지만 누군가는 막대한 이문을 남길 ‘대목’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KF94 마스크 221만 장을 확보해 대구에서 820원에 판매한 이마트를 기억하고, 가맹점의 임대료를 대신 내 준 명륜진사갈비를 기억하는 일이다. 또 쿠팡과 11번가, 중고나라에서 폭리를 취한 마스크 유통업자들을 잊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주는 ‘팃포탯’을 하는 것이다.

나아가 코로나19 사태를 조기에 극복하는 것 역시 각각의 구성원에게 얼마나 신뢰를 심어주고 협조를 이끌어 내느냐에 달렸다. 협조를 거부하는 단 한 명에 의해 집단 감염이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게 바이러스다.

경계해야 할 건 집단광기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유대인과 집시, 외국인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성이 마비된 집단광기의 대명사인 ‘마녀사냥’이라는 게 생겨난 것도 그때다. 삶이 팍팍해지면 국내 어느 지역 사람이, 특정 정당이, 다른 국가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그렇게 협조를 끌어낼 수는 없다.

“외계인이 침공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싸우다가도 협력해야 한다.”
고(故) 노회찬 국회의원의 촌철살인 중에 이 시점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이다. 자 이제 코로나19라는 ‘외계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광화문]외계인이 침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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