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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안다, 그대가 더 아파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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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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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권혁소 시인 ‘우리가 너무 가엾다’

[시인의 집] 안다, 그대가 더 아파한다는 걸
1984년 시 전문지 ‘시인’과 이듬해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권혁소(1962~ )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우리가 너무 가엾다’는 아이러니하게도 “세상과의 불화”(이하 ‘시인의 말’)로 태어났다. 좀체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반골기질을 타고난 시인이 광장이나 노동현장에서의 투쟁을 시로 삭혀냈다. 곰삭은 내가 진동한다.

자칭 ‘교육노동자’라는 시인은 강원도 인제의 한 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백두대간 병풍 아래”(‘학주’) 거처를 마련한 후 도인처럼, 호랑이처럼 살 법도 한데 세상으로 열어놓은 귀와 입을 닫지 못한다. “4·3 항쟁 70주년 전국문학인대회를 하러 제주에 가”(‘동백을 줍다’)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라는 추모시를 써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 ‘니똥 굵다’라는 시에서는 “강변 축제”를 위해 구미동 사람들이 “땔나무를 자르고/ 솥단지를 걸고/ 국밥을 퍼 나”르며 분주한데, 막상 축제가 시작되자 누가 불렀는지 모를 “1번 군수, 1번 부의장. 1번 도의원, 1번 군의원”이 번갈아 축사를 한다. 이를 바라보던 시인은 “니 똥 굵다 엄청 굵다”라고 직격탄을 날린다. 시 ‘영화 지슬’에서는 “역사는/ 언제나/ 증인 하나쯤/ 꼭 남”겨 잘못된 “역사를 단죄”한다고도 했다. 시인의 역사인식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검버섯은 피고
근육은 점차 소멸할 때
물매화를 닮은 아린 사랑 하나
내게로 와서
꽃 피우라
속삭인다

혼자 잠드는 일에 익숙해지던,
맹물에 끼니를 마는 날들이 늘어나던
오월의 어떤
신록 무렵이었다

뒤늦은 사랑은 그렇게
느닷없다는 말과 함께 와서
격조했던 언어들에게 말을 걸고
화석이 되어가던 심장에
맑은 물줄기 하나
흘려놓았다

사랑 그것은 광장을 밝혔던 촛불 같아서
내가 어두울 때 비로소 나를 환하게 한다

어떤 꽃은 지고
어떤 꽃은 피던 때였다

- ‘사랑, 느닷없는’ 전문


그렇다고 강하기만 할까. 한 소설가는 “그의 시편 속에서 거친 외피 속에 숨겨져 있는 수줍은 순정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순정주의자는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변화는 답답할 만큼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념이나 이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런 행동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에 ‘사랑’이란 시어가 유독 눈에 띈다.

시인에게 사랑은 “평화를 낳는 일”(‘서툰 사랑’)이고, “흙처럼 만질 수 있는 것”(‘바다처럼 잔잔히 밀려오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은 “광장을 밝혔던 촛불 같”(이하 ‘사랑, 느닷없는’)고, “내가 어두울 때 비로소 나를 환하게” 해준다. 특히 뒤늦은 사랑은 “느닷없다는 말과 함께 와서/ 격조했던 언어들에게 말”을 건넨다. 시인에게 사랑은 시의 다른 이름이다. “오월의 어떤/ 신록 무렵” 고목에 꽃이 피듯 시를 통해 나를 만난다.

나무도 어떤 마음을 키우고 있었다는 걸
몸통을 잘라보고서야 알았다
굴참나무 흰 속살이 키운 검은 나비 한 마리

겨울 하늘로 날려 보낸다

수천의 나비를 도살하고서야
나무도 어떤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깨닫다니

사랑을 잊으려는 자학적 노동의 한가운데
나는 끝내 우화하지 못하고 참혹하게
무심한 계절만 톱질하고 있구나

- ‘나무의 마음’ 전문


춥고 긴 강원도 산골에서 겨울을 나려면 땔감부터 마련해야 한다. “한겨울 나의 주된 가사노동은 땔나무를 하는 일”(이하 ‘벌목’)이다. “현준 아범에게 엔진톱 쓰는 요령을 배”워 죽은 나무를 자른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족히 스무 그루”가 필요하다. 톱질을 할 때마다 하얗게 날리는 톱밥이 나무의 비명 같아 시인은 그저 미안하다. “봄에 나무를 심”어도 다시 선한 사람이 될 것 같지 않다.

죽은 굴참나무를 자르던 시인의 눈에 “검은 나비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겨울 하늘로 날려 보”내지만 마음이 무겁다. 이 추운 겨울에 살 수 있을까. “노동만이 눈부신 겨울”(‘어떤 패착’)에 “수천의 나비를 도살하고” 있다는 생각에 참혹해진다.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죽은 나무를 자르는 행위와 그 안에 사는 검은 나비에 대한 도살은 권력의 폭력을 연상시키고, 이는 ‘과연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이어진다.

6년 동안 유도를 하다가
운동을 그만 두는 조건으로
학기 중 전학을 택한 1학년 민우가
배드민턴을 치는 동아리 시간에 물었다

선생님, 시집가예요?
시집가라니, 뭔 말?
도서관에서 봤어요.
아, 시집을 봤다고?
네, 선생님 시집가죠?

소설을 쓰니까 소설가
시집을 내니까 시집가

민우 덕분에 집 한 채 얻었다

- ‘시집가’ 전문


권혁소의 시가 투쟁이나 성찰만 담고 있는 건 아니다. 학창시절 숨어서 피우던 담배와 선생이 되어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 피우는 담배에 대한 단상(‘담배’), 화장실 문짝 높은 곳에 써 놓은 획 하나 빠진 생사라는 한자에 대한 애잔함(‘生死’), 선생님이 첫사랑이었다는 삼십 년 전 제자의 늦은 고백 문자에 얽힌 기억(‘영희의 첫사랑’) 등 나이 들어 만난 제자들에 대한 사연을 다룬 시에는 애정과 골계미가 스며 있다.

시 ‘시집가’에서 “학기 중 전학을 택한 1학년 민우”와의 대화에는 애정이 담뿍 담겨 있다. 바보스러울 만큼 천진한 민우의 말에 슬그머니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민우 덕분에 집 한 채 얻었다”는 시인의 재치에 무릎을 탁 친다. 시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이는 시 ‘할머니 칼국수’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수를 먹어야지 생각하니” 더불어 “기분이 좋아”지고. 칼국수 두 그릇을 시키고 “속이 따뜻해지면” 덩달아 따뜻해진다. 예전에 엄마가 해주던 칼국수가 생각나 모락모락 추억에 젖어든다.

권혁소 시의 미덕은 같이 슬퍼하고 같이 아파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묻는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 것이냐고”(‘우리가 너무 가엾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삶의 성찰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짧은 시 ‘거짓말’에 다 들어 있다.

알면서도 눈 감는 말
가을에 농사 지어 갚을게

안다
그대가 더 아파한다는 걸


◇우리가 너무 가엾다=권혁소 지음. 삶창 펴냄. 136쪽/1만원.


[시인의 집] 안다, 그대가 더 아파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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