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광화문]자발적 감시사회와 붉은완장

머니투데이
  • 베이징(중국)=김명룡 특파원
  • 카카오톡 공유하기
  • 카카오톡 나에게 전송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2020.03.11 03:48
  • 글자크기조절
  • 댓글···
중국 수도 베이징은 한국과 일본 등에서 온 외국인에 대해선 발열여부와 상관없이 14일간의 자가격리를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 수도 베이징은 한국과 일본 등에서 온 외국인에 대해선 발열여부와 상관없이 14일간의 자가격리를 의무화하고 있다.
가족이 한국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온 다음 날 현관문엔 A4 한장 짜리 통지문이 붙었다. 한글과 중국어로 '사랑하는 이웃주민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이 통지문에는 가족들이 언제 한국에서 들어왔으며 14일간의 자가격리를 충실히 지키겠다는 약속이 적혀 있다.

통지문은 "모두들 합심하여 하루 빨리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중국에서 자가격리 중인 한국인의 집을 빨간딱지로 봉인을 했다거나, 문앞에 CCTV(감시카메라)를 설치해 감시한다거나 하는 사례를 이미 접했기에, 알록달록 예쁘게 꾸민 경고장이라 그런지 거부감이나 위화감은 조금이나마 덜 느껴졌다.

그런데 다음날 주민위원회(小區)라는 곳에서 '자가격리를 어기고 외출을 했다는 신고를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아파트 한 층에 2가구가 살고 있으니 신고는 우리와 문을 마주하고 있는 앞집이 한 것이 명백했다.

오해에서 빚어진 잘못된 신고였다. 중국에서 오래 거주한 기자는 가족이 오기 전까지는 자가격리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앞집 이웃은 집앞에 붙은 경고장을 보고 최근 외출을 한 것을 목격했다고 신고한 것이다. 앞집 주민과 우연히 만나 사정을 얘기했고, 오해는 풀렸고 작은 선물을 주고 받는 것으로 그럭저럭 훈훈하게 마무리가 됐다.

통지문이 왜 '사랑하는 이웃주민 여러분'으로 시작됐으며, 왜 문앞에 붙어 있었는지를 알게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가족만 보게 할 것이었으면 떡하니 문앞에 붙여 놓고 떼면 안된다고 요구했을 리 없다. 통지문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앞집을 위해 붙여졌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중국이 사회 감시·통제 시스템이 강한 사회주의 사회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문에 붙은 통지문은 실제로는 감시와 행동통제에 큰 효과를 발휘했다.

중국은 강력한 감시사회다. 친구들 사이의 대화라도 체제를 비판하면 어느새 공안당국에 신고가 된다. 자율적인 감시가 발휘하는 힘을 쉽게 가늠하기도 어렵다. 수억대에 이르는 방범 CCTV보다 국민 스스로 서로를 감시하는 것이 사회 전반을 더 촘촘하게 감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내용의 경고장을 붙인 곳은 주민위원회라는 자치 조직이지 정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자치조직은 발열이 없는 한국인이 아파트로 귀가하는 것을 아무 이유 없이 막기도 한다. 중국 당국은 한국인 입국자의 자가격리를 허용했지만 주민위원회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일부에선 주민위원회에서 한국인의 집을 나무판으로 막는 일도 벌어졌다. 이 역시 주민위원회의 자체적인 판단이다.

주민위원회 단체 대화방에선 '한국인 출입금지'라는 말이 쉽게 오간다. 그곳이 한국인 거주자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주민위원회의 노골적인 차별대우에 반발해봐야 당국이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는다.

당국은 주민위원회의 행동을 수수방관한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통제가 절실한 상황에서 주민위원회가 알아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니 오히려 고마워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주민위원회는 새로운 완장을 찬 듯 보인다. 존재 여부 조차도 희미했던 이 주민위원회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최근에는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 시절 반정부 세력을 색출하던 홍위병처럼 방역을 이유로 거칠게 단속을 하는 방역 요원들이 모습이 공개돼 빈축을 사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에선 아파트 경비원이나 백화점 점원, 지하철 안내원도 완장을 차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완장에 찬 문구는 치안순찰, 위생관리, 교통질서 따위의 평범한 내용이다.

완장은 누군가에겐 새로운 권력이겠지만 누군가에겐 또 다른 통제일 뿐이다.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완장은 실제론 별 힘이 없는 이들이 차는 경우가 많다. '만석꾼의 권력을 쥔 진짜 주인은 언제나 완장 뒤편 안전한 곳에 숨어 있었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의 한 대목이다. 완장 뒤 주인은 정작 코로나19 에서도 피해있는 것은 아닐까.
[광화문]자발적 감시사회와 붉은완장



칼럼목록

종료된칼럼

오늘의 꿀팁

  • 날씨
  • 건강쏙쏙

많이 본 뉴스

부동산 유튜브 정보채널 부릿지
머투맨 the 유튜브가이드

포토 / 영상

머니투데이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