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국가안보와 인간안보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폭넓은 공공의료시스템 구축과 투명하고 신속한 행정서비스체계가 ‘인간안보’(human security)에 중요한 구성요소며 기존 안보개념은 주권을 둘러싼 정의로부터 탈정치화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를 중심으로 군사적 수단을 사용해 영토의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는 것을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라고 한다면 인간안보는 개인을 기근이나 질병, 억압으로부터 보호하고 갑작스러운 일상의 중단에서 오는 고통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 기존 국가안보 개념이 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공동체 수호에 우선을 두었다면 인간안보 개념은 그렇게 수호된 국가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을 어떻게 증진할 것인지에 우선을 둔다. 그러니까 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로의 전환에는 적어도 2가지 이행이 전제된다. 첫째는 영토에 대한 보호에서 사람에 대한 보호로의 이전이고, 둘째는 군사적 수단에 의한 안보에서 개인의 지속적인 발전을 통한 안보로의 이전이다. 즉 외부의 군사적 공격보다 내부의 환경오염, 전염병, 인권침해 등에 따른 위험이 더 심각하게 공동체의 안보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안보 개념은 1990년대부터 등장해 기존 안보 논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도전을 계속해 왔지만 지역에 따라 편차를 두고 확산했다. 예컨대 유럽연합의 ‘글로벌 전략 2016’은 인간안보를 핵심 개념으로 설정하고 이를 추구하는 것이 자신들의 전략적 주요 목표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지역에서 인간안보 개념은 주권 중심의 국가안보가 지배적인 이 지역의 현실에서 기존 안보 패러다임과의 갈등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일본이 그나마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재해에 취약한 환경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찍부터 인간안보 개념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일본의 인간안보는 공포로부터의 자유보다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에 더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는 2가지 이유를 추론할 수 있는데 첫째, 일본 자위대의 독특한 군사적 지위 때문에 국가를 보호한다는 것보다 개인을 보호한다는 주장이 군사력 보유 정당화에 더 좋은 논리였고 둘째,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할 때 발생하는 군 위안부나 강제노동 등 과거사 문제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중국은 인간안보 개념을 쓰지 않는 대신 ‘비전통안보’ 등의 표현을 주로 쓰고 이 개념이 중국 전통사상인 ‘인민중심’ 표현 등에 이미 담겼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쓰촨 대지진이나 코로나 위기에서도 외부의 인도주의적 지원이 국내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심했다. 한국 역시 공식적인 안보논의에 인간안보 개념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공적개발원조에 이 개념을 적용해 사용한다.
　
국가안보에서 인간안보로 초점이 이동함에 따라 주권 개념 역시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에서 그들을 ‘보호해야 할 책임’으로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위기는 주권이 개인을 보호하는 방식 역시 변화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성과 과학에 근거한 근대 계몽 프로젝트는 인간 이외 모든 사물을 타자화하면서 인간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물질문명의 노예로 전락시켰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현재 위기는 우리가 타자화해 이용하고 파괴한 자연과 동물들의 생태계 역시 인간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공존해야 할 ‘생명’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