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뗀 금호, 뗄까말까 HDC…고통분담 대주주 누구? 산은의 고민

/ 사진=인천=이기범 기자 leekb@

항공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이 임박해지면서 산업은행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자구노력을 요구할 대주주가 불분명한 탓이다. 현재 대주주는 금호산업이지만 매매를 위한 계약을 체결한 상태고, 새 주인인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유상증자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만약 현산이 인수를 포기하면 산은 등 채권단이 관리하게 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코로나19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항공사에 유동성을 지원할 방침이다. 아시아나항공 등 FSC(종합항공사)도 그 대상이다.


이같은 금융지원에는 이해관계자의 자구노력이 필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날 언론과 민간 자문위원 등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리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항공산업의 구조적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아 금융지원과 함께 자본확충, 경영개선 등 종합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결기준으로 지난해말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1386.7%다. 전년도 649.3%의 거의 2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부채가 급증하면서 이자비용은 1634억원에서 3501억원으로 급증했다. 순손실이 1958억원에서 8178억원으로 늘어난 데는 이자비용이 증가한 것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우선협상자인 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은 1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키로 했다. 하지만 이날로 예정된 유상증자 납입은 무기한 연기했다. 코로나19 등으로 해외에서 기업 결합심사 승인이 늦어지면서 일정 연기가 불가피했다고는 하나 이 때문에 현산이 인수여부를 다시 따져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로 항공산업이 위기에 빠지면서 가격 등 모든 조건이 달라지면서 현산이 멈칫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는 30일로 예정된 구주 인수계약일마저 연기되면 아시아나 매각 무산설은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산은을 비롯한 아시아나 채권은행은 M&A(인수합병) 거래가 마무리돼 현산이 대주주로서의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현재 대주주인 금호산업은 아시아나를 매물로 내놓은 만큼 아시아나를 지원할 여력이 없다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만약 인수를 단념하는 경우 산은 등 채권단이 아시아나를 떠맡아야 한다.

산은은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사업자가 인수를 되돌렸던 대우조선해양의 전례를 되풀이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2009년 한화그룹은 우선협상자로 선정됐음에도 대우조선해양 인수작업을 멈췄고, 산은은 지금까지 대우조선해양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그 사이 산은 등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에 7조원 이상을 투입했다.

산은이 아시아나를 맡으려면 출자전환이 필요하고 이는 곧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2017년 대우조선해양에 적용된 구조조정 원칙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당시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에 2조9000억원을 투입하는 대신 시중은행, 회사채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채권자는 사채액의 50%는 출자전환했고, 50%는 만기를 연장했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회사채와 ABS(자산담보부증권)로 자금을 조달한 비중이 높아 산은과 수은만 자금을 투입하면 회사채 투자자만 이익을 보게 된다. 산은과 수은, 시중은행 등은 항공기 등 담보를 가지고 있는 반면 회사채 투자자는 무보증사채에 투자한 것이어서 회사채 투자자에게 유리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기도 어렵다.

채권단은 아시아나 매각은 금호산업과 HDC현대산업개발간 계약이기 때문에 언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거래가 무산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만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항공산업은 기간산업이고 코로나19 사태만 해소되면 반등이 가능하다”며 “금융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진 산은 등이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시간을 끌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