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영상' 관전자니까 괜찮다고…판례 "어림없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 2020.3.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검찰이 8일 여성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혐의를 받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을 12차 조사하고, 공범으로 지목되는 사회복무요원(공익요원) 강모씨(24), 닉네임 '태평양' 이모군(16)도 소환해 조사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이 주범 조주빈과 공범들뿐 아니라 n번방, 박사방 등에서 성착취물을 시청한 관전자들도 처벌이 가능한지 과거 판례 등을 검토 중인 가운데, 과거 카카오톡 메신저로 성착취 영상을 전송받은 것을 '소지'로 인정해 처벌받은 판례가 있어 주목되고 있다.


조씨 일당은 20만원, 70만원, 150만원 등 등급별 유료회원 입장료를 암호화폐 계좌를 통해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 유료 박사방 가운데 가장 낮은 레벨의 20만원방에만 수백명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텔레그램 성착취방 전체 이용자는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까지 추정되고 있는 상태다.

대법원이 해당 판례의 입장을 유지할 경우 n번방 관전자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영상을 저장하지 않았더라도 소지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어 처벌범위가 훨씬 넓어질 전망이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2016년 9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에 대해 음란물소지 등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미성년 피해자를 협박해 카카오톡 메신저로 나체사진과 성착취 영상을 전송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군사법원에서 진행된 1심은 박씨에게 형법상 강요죄 등을 인정해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음란물 소지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박씨가 메신저로 사진과 영상파일을 전송받았더라도 최종적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하지 않았다면, 파일에 대해 자유롭게 편집하거나 변경하는 처분을 할 수는 없으므로 음란물 소지로 볼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음란물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만으로 소지를 인정한다면 소지죄의 구성요건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2심을 맡은 고등군사법원은 1심과 달리 박씨에게 소지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박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음란물 소지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단에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소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며 소지죄를 유죄로 봤다.

다만 사건 진행중 형법이 개정된 점을 고려해 구법이 아닌 신법을 적용해야 한다며 사건을 2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은 박씨의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소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재판부는 "아동 음란물 소지죄의 일차적인 보호법익은 음란물에 등장하는 대상 아동의 성적 보호"라며 "인터넷상의 포르노를 ‘영구적인 성학대의 기록’이라고 일컫는 만큼 유출된 아동 음란물의 대상 아동은 지속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동음란물이 공공연히 유통되는 경우 아동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사회적 풍조가 조장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에게까지도 일정한 제재를 가할 정책적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소지’라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Δ음란물(사이버상에서는 파일의 형태로 존재)이 보관, 유포, 공유가 가능한 상태에 있어야 하고 Δ언제든지 접근 가능한 상태로 존재하여야 하며 Δ행위자가 위 음란물을 실력적으로 지배할 의도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씨가 Δ동영상 파일을 전송받기 전부터 피해자가 미성년자임을 인식하고 있었고, 피해자에게 사진, 동영상을 촬영한 뒤 보내줄 것을 요구하였던 점 Δ피해자는 박씨의 요구에 의해 사진, 동영상 파일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전송하였던 점, Δ카카오톡 메신저로 전송된 사진, 동영상 파일들은 대화당사자가 채팅방을 나가지 않는 한 언제든지 위 파일들을 볼 수 있다는 점, Δ자신의 기기에 저장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타인에게 공유, 유포할 수도 있다는 점 Δ박씨가 약 5~6일 동안 계속 채팅방을 유지하면서 위와 같이 전송받은 사진 및 동영상파일을 여러 번 반복해서 봤던 점을 종합하면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소지'했다고 볼 수 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법조인들은 대법원이 이같은 입장을 유지할 경우 해당 판결내용이 n번방 사건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n번방·박사방에서 언제든지 영상을 볼 수 있는 상태였다면 굳이 기기에 저장하지 않았더라도 소지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대법원이 해당판결을 수긍한 점이나 요새 여러상황을 보면 n번방 사건에서도 소지죄 인정이 가능할 것 같다"며 "의미있게 해석될 수 있는 판례인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판사도 "판결에서 제시한 조건들이 이번 사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은 기술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고, 이 경우는 1대1 방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n번방은 다수가 참여한 방이었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더 살펴봐야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해당 판결의 적용을 위해서는 결국 대법원의 명시적 기준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형로펌의 변호사는 "하급심 판단을 대법원이 수긍하는 것과 적극적으로 법리판단을 내리는 것은 다르다"며 "대법원이 원심을 수긍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대법관 전체의 의견은 아니므로, 대법원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급심 판결만으로는 모든 사안에 적용이 어렵다. 처벌범위가 크게 달라지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사안이기 때문에 결국 대법원이 나서 확정적인 기준을 내줘야 일선법원에서 판결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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