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전기 도살에 '유죄' 내린 대법원, 이유는?

식용 개고기를 납품하는 업자가 전기로 개를 도살했다면 불법에 해당될까 안 될까.


1심에서 무죄로 판결나면서 전국 동물보호단체들의 반발을 불렀던 '개 전기도살 사건'이 5번의 재판 끝에 유죄로 확정됐다. 양형은 100만원의 벌금(선고유예)에 불과했지만, 대법원이 던진 메시지는 그보다 더 컸다. 법은 사회통념과 시대상을 반영해야 하고, 잔인함의 기준을 인간이 아닌 동물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축시장에서 동물보호단체들이 가축을 구조하고 있는 모습

"잔인한 방법 아니다? 섣불리 단정 말라"이 사건은 2014년 2월,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경기도 고양에 있는 개 경매장과 도살업자 이모씨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2011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이씨가 전기 충격기 등을 이용해 30여 마리의 개를 죽여 보신탕집 등에 팔아온 혐의(동물보호법 위반)다.

1심 재판부는 무죄로 판단했다. 2017년 6월, 인천지법은 "전기도살이 동물보호법 8조 1항 1호에서 규정하는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도 비슷한 취지로 무죄 판결을 냈다. "전기도살이 동물의 고통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판단의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원심판결을 파기한 이유로 "개 도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전기도살 방법을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개 도살에 사용된 쇠꼬챙이에 흐르는 전류의 크기나 도살방법의 구체적 행태, 개에 나타난 증상, 또 이 판결로 인해 국민 정서에 미칠 영향, 사회통념상 개에 대한 인식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취지다.
박수 소리 연신 터져나온 법정파기환송심은 지난해 12월 20일 서울고법 303호에서 열렸다. 서울고법 형사5부(당시 부장판사 김형두)는 전살법이 동물보호법상 제8조 '잔인한 방법'에 해당된다고 명시했다. 특히 '잔인성'을 규정하는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잔인은 사전적 의미로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짊'을 뜻한다. 잔인성에 관한 논의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동하는 상대적, 유동적인 것이고 사상, 종교, 풍속과도 깊이 연관된다. 잔인한 방법인지 여부는 특정인이나 집단의 주관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그 시대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법은 시대 흐름을 반영하며 변화한다. 시계를 1976년으로 돌려보자. 그땐 전살법이 합법이었다. 구(舊) 축산물가공처리법 시행규칙(농수산부령 제640호)이 1976년 10월 26일부터 1978년 6월 23일까지 시행된 바 있다. 그때는 전살법이 '잔인한 방법'에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재판부는 유죄로 보고 양형으로 100만원의 벌금형과 선고유예를 내렸다. 당시 법정안을 가득 메운 동물보호단체 회원들과 반려인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쏟아냈다.

그럼에도 이씨는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9일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를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5번의 재판을 거친 결정이다.

동물권행동카라 회원들이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개 전기도살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기자회견'에서 손팻말을 들고있는 모습

축산법에는 있고, 축산물위생관리법엔 없는 '개'
개 전기도살 사건의 저변에는 '법의 맹점'이 자리하고 있다. 국회 입법 공백, 국회 역할 부재를 꼬집지 않을 수 없다. 동물단체에서 가축의 정의에서 개를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계류중이다.

구 동물보호법 제10조 2항을 보자. 축산물 위생관리법 또는 가축전염 예방법에 따라 동물을 죽이는 경우 농림축산식품부령이 정하는 방법을 이용해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축산법에는 개를 소, 말, 양, 돼지, 오리, 사슴, 닭 등과 함께 가축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축산물 위생관리법에는 개가 포함돼 있지 않다. 따라서 동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하고 있는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축별 도축방법을 설명하는 부분에 개는 빠져 있다. 개가 영세하고 비위생적인 도살장에서 비공식적으로 도축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