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바이러스가 본 강남룸살롱

인류 역사에서 3대 전염병을 꼽자면 페스트(14세기) 천연두(16세기) 그리고 1918년 스페인독감이 될 것입니다.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3분의1 이상 희생시키고 중세의 종말을 가져온 엄청난 역병이지만 학자들은 역사상 최초 팬데믹(pandemic)으로 천연두를 지목합니다.
　
500년 전 천연두는 낙타를 숙주로 유럽에 퍼졌고 세계 여행이 시작되면서 아메리카대륙으로 넘어갔습니다. 천연두는 면역력이 없는 수백만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 찬란했던 마야 아즈텍 잉카문명을 무너뜨린 것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지적대로 총도 쇠도 아닌 균이었습니다.
　
1918~19년의 스페인독감 팬데믹은 5000만명을 죽였습니다. 20세기에 일어난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들을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스페인독감은 유럽 몰락의 시작이며 세계 문명의 패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인류 역사상 세 번째 팬데믹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지난해 12월31일 중국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우한을 중심으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고 보고한 이래 세계적으로 180만명의 확진자와 10만명의 사망자를 기록 중입니다. “정점은 찍었다”는 낙관론도 나오지만 언제 종식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전 홍콩독감(1968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2002년) 신종플루(2009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2015년) 등이 있었지만 사회·경제적 충격이나 파장에서 코로나19와 견줄 만한 것은 없습니다. 페스트, 천연두, 스페인독감이 그랬듯이 이번 코로나19도 세상을 크게 바꿀 것입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데 많은 사람이 공감합니다.
　
단적으로 이번 바이러스 감염의 온상이 된 크루즈산업은 몰락할 게 분명합니다. 항공·여행업도 고전이 예상됩니다. 반대로 ICT(정보통신기술)·바이오산업은 또한번 도약의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언택트(비접촉) 경제’를 넘어 ‘서로게이트 이코노미’(surrogate economy·대리경제)로 이행할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미국과 중국(G2) 중심의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서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일상에도 큰 변화가 예상됩니다.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변화해야 합니다. 중국 미국 유럽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이렇게까지 당한 것은 정책결정자들의 어설픈 초기 대응과 잘못된 위험판단 때문입니다. 재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정부당국만이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이 올바르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현실은 간단치 않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위협적인 소식에 대중은 만성적인 위험 불감증에 빠집니다. 단적인 예가 코로나19 사태 속에 터진 강남 룸살롱 감염 사건입니다. 지하의 밀폐된 공간에서 수백 명이 술 마시고 떠들고 노래하고 서로 밀착접촉까지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바이러스 관점에서 보면 강남 룸살롱은 다른 숙주로 이동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고 기회일 뿐입니다.
　
강남 룸살롱뿐이겠습니까. 젊은층이 즐겨 찾는 클럽과 노래방, 와인바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제 우리에게 음주 성생활 같은 밤문화까지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사냥 도축과 함께 성행위는 바이러스 관점에서 보면 한 개체에서 다른 개체로 이동하는 데 최적의 기회이자 최고의 조건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포함해 인간 질병은 대부분 동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선 육식 위주의 식생활에 대한 근원적 재검토도 필요합니다. 건강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수술이나 장기이식 수혈 같은 행위도 그것이 팬데믹의 출현과 확산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
　
21세기 들어 가장 충격적인 사건 하나를 들자면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입니다. 9·11테러로 죽은 사람은 2996명입니다. 이에 비해 코로나19로 지금까지 미국 뉴욕시에서만 5000명 가까이 사망했습니다. 인간의 죽음은 우리 입장에선 충격적이고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바이러스 입장에선 새로운 숙주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