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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그녀는 왜 가해자와 합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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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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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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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성범죄 피해자가 가장 원하는 건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에요."

'형량이 깎인다는 걸 알면서도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합의에 나서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피해자 전담 변호사가 말했다. 질문 취지에 맞는 답은 아니었지만, 호기롭던 나의 취재 방향이 틀렸단 걸 깨닫기엔 충분한 답이었다.

조주빈 체포 이후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법원을 출입하며 감경 사례를 자주 접했던 나는 공감했다. 법에는 가해자가 감경받아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았다. 특히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성범죄가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성범죄에 정통하다는 변호사들은 하나같이 합의 감경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무엇보다 피해자가 원한다고 했다. 긴 재판과정에서 피해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자신의 삶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합의라고 했다. 피해자로 살아가는 동안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그들이었다.

금전적 보상도 중요한 요소다. 피해자는 고통에 대해 금전적으로라도 보상받아야 한다. 게다가 성범죄 피해자들은 피해 경험 이후 사회활동을 그만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행 시스템에선 가해자와의 합의가 아니면 보상을 받을 길이 막막한 게 사실이다. 손해배상 청구는 따로 또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배상명령 제도는 사문화된 지 오래다. 게다가 어떤 식으로든 가해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선 추가적인 피해의 증명이 필요했다. 피해자에게 가혹한 일이다.

기준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더 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오히려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를 입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양형기준의 변화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피해자라면 응당 가해자의 엄벌을 가장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야말로 그들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했던 건 아닐까. 형사처벌이 국가가 가하는 '벌'이라면 배상은 당사자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개인의 권리'라던, 가해자가 엄한 처벌을 받았다는 마음의 만족과 실질적 배상으로 피해회복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피해자가 정할 수 있어야 한다던 변호사의 말이 내내 남는다.

[기자수첩]그녀는 왜 가해자와 합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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