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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관료에게 영혼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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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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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180 석을 확보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관료의 기를 꺾는 일이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고소득 가구에게 지급하는 것을 반대하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여당은 당대표에 원내 1당 몫의 국회의장까지 지낸 정치인 출신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동원해 압박한 끝에 백기를 들게 했다. 홍 부총리는 그 일이 있고 국회에 출석해 여전히 “(재난지원금 지급은) 70%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관료적 신념에 반하는 정책에 마지못해 동의했음을 시인한 것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부총리를 사령탑으로 하는 경제 중대본(중앙대책본부)으로 모든 부처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면서 혼연일체가 돼 위기 극복의 전면에 나서 주기 바란다”고 한 것이 무색하다. 이제 누구도 더 이상 경제부총리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대책의 사령탑이라고 할 수 없게 됐다. 대통령의 말까지 부도수표로 만든 것이다.

여당은 총선 공약을 이행한다는 명분 이상이었다. 여당에는 '참여정부가 관료에 포위돼 개혁에서 멀어졌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 180석이라는 '개헌 빼고 뭐든 할 수 있는' 초유의 의석을 예약하고도 아직 그런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방어기제를 확보하고 있다는 게 씁쓸하다.

따지고 보면 180석은 오로지 여당이 잘해서 얻은 게 아니다. 총선 이전에 실시된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국민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잘 해 나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감동해 여당에 표를 줬다. 투표는 가슴으로 하는 행위다.

공을 따지자면 팔할은 테크노크라트들에 있다. '한미 통화스와프'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홍남기 부총리의 노력으로 체결돼 외환시장과 금융시장, 주식시장이 안정됐다. 홍 부총리가 주도한 공적마스크 사업으로 국민의 마스크 불안이 해소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무엇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뚝심있게 주도한 방역이 유권자들이 마음을 활짝 열어젖혔다. 문 대통령은 그들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북돋아줬다.

선거는 여당이 승리했고, 관료는 신념을 잃었다. 홍 부총리와 재정 당국 관료들은 마지막까지 영혼을 지키려 했지만 여당 정치인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토사구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 사치스럽다.

미래에 사라질 직업이 한두개가 아니겠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 관료라는 직업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관료의 일이란 건 엑셀 프로그램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됐다. 인공지능(AI)이 대체할 것이다. 막스 베버가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관료는 영혼을 갖는 게 금지된다.

영혼 없는 관료가 만들어낼 세상이 유토피아일 수 없다.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을 수용소로 이송하는 일에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에서 진행된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지켜보면서 그가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했다고 묘사했다. 근면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문제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히만의 죄는 복종에서 나왔다. 근면과 복종이라는 ‘미덕’이 나치 지도자에 의해 오용됐다고 아렌트는 알아차렸다.

21세기 한국에서 관료는 정치인에 철저하게 복종해야 한다. 현재에 사는 정치인들 앞에서 '한 치 앞'을 얘기하면 안된다. 파국이 뻔히 보이지만 토를 달면 안된다. 영혼을 가져서는 안된다. 아이히만이 다시 등장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좋은 정부의 신하가 되는 것은 행운이고, 나쁜 정부의 신하가 되는 것은 불운이다.”

아이히만이 예루살렘 법정에 잡혀와 사형 선고를 받기 전에 했다는 이 진술이 우리 시대 관료들의 변명이 될 수 있게 몰아가는 이들은 누구인가. 좋은 정치를 만난다면 관료에게 행운이지만, 나쁜 정치를 만난다면 불행은 절대 한 관료 개인의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광화문] 관료에게 영혼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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