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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雜s]덕업일치, 안철수는 어떻게 달렸나…'나는 달린당’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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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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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3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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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50대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덕업.
이 단어를 듣고 ‘어질고 착한 업적’이 머릿 속에 떠오른다면 당신은 아재 혹은 아짐이다.
요즘 표준말로는 ‘오덕질과 직업’이다.
일본말 오타쿠(おたく)에서 변형된 (오)덕질은 어느 하나의 분야를 미친 듯이 좋아하고 빠져드는 짓을 말한다. 그 덕질을 직업으로 하는 덕업일치를 이루면 말 그대로 드림 컴 트루다(덕질
이 직업이 되면 그때부턴 기쁨이 아니라 노동이 된다는 반론이 설득력 있긴 하다)

덕업일치.
4.15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난 뒤에도 인구에 회자되는 질문중의 하나인 “안철수는 왜 뛰었지?”에 대해 내가 떠올린 답이다.
한국 사람들 셋만 모이면 정치 이야기이고,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둘만 만나도 하루 종일 달리기 이야기다. 정당의 대표, 그것도 늘 대통령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정치인이 마라톤을 하는데 나같은 ‘나는 달린당’ 잠재 당원들의 관심이 없을 수 없다.
(*나는 달린당: 잠재 당원 300만명. 영문-I RUN, 약칭-달린당, 위성정당-우린 달린당, 너도 달린당?).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는 이번 총선 기간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출발해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까지 14일간 453km를 ‘달렸다’. 누란지위 국가를 구한 이순신장군처럼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들을 지키겠다는 각오를 담았다고 했다. 힘들 때면 찾아가곤 했던 처갓집이 여수이기도 하다. 심리적 안정을 주는 포근한 홈그라운드가 출발지로선 제격이었을 것이다.
정치적 의미나 성패를 떠나 ‘러너 안철수’는 달덕(달리기 덕후)들에게 국토종단이라는 대망을 떠올리게 했고, 나도 할 수 있다는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안대표가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으로 완주했다는 뉴스를 봤던게 겨우 1년여 전인데, 어떻게 저게 가능할까. 순전히 러너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권자의 주목을 끌기 위한 이벤트로? 지역구 후보를 내지도 못한 군소정당 대표로서 딱히 할 수 있는 선거 수단이 없어서? 좋아하는 일(달리기)을, 이루고자 하는 일(정치)과 엮어보려는 덕업일치의 열정과 자신감 없이는 ‘포레스트 검프’ 유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는 일이다.



달리기의 '막장' 국토종단...아무나 하는게 아닌데


달리기를 시작하면 5km에서 10km 하프를 거쳐 풀코스를 최종 목표로 삼는게 보통이다. 5~10km 달리기는 요즘 젊은 참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풀코스 이상, 그리고 50km 100km
같은 울트라 마라톤에선 산전수전 겪은 중장년들이 훨씬 많다. 주력(走歷)이 쌓이면서 마냥 달리는 것으론 성이 안차는 이들은 철인3종(수영 사이클 달리기), 트레일 러닝(산악마라톤)에도 도전한다. 중독증세가 심각한 일부는 사막이나 밀림을 달리기 위해 지구 오지를 헤매게 된다. 그중에서도 달리기의 막장은 단연 국토종횡단 같은 서바이벌 초장거리 달리기다.

국내에서는 대한울트라마라톤협회(KUMF) 주관으로 보통 1년에 국토종횡단 대회가 세차례 열린다.
올해는 대회 개최가 불투명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강화 창우리-강릉 경포대(311.7km/시간제한 64시간),
△부산 태종대- 임진각(537km, 127시간),
△해남 땅끝-강원 고성(622km/150시간) 이다.
짧게는(?) 2박3일, 길게는 6박7일 동안 ‘달려야’ 하는 것이다.

규칙은 단순하다. 목적지까지 혼자 힘으로 달려 들어오는 것이다. 구간별 제한시간 내에 체크포인트(CP)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쉬엄쉬엄 걸어 가서는 골인할 수 없다. 중간에 숙박업소나 사우나 찜질방 같은 곳에 들어가서 잘 수 없다. 두 다리 외에 자동차나 자전거 같은 걸 타서는 안되는 건 물론, 공식 CP 이외 장소에서 타인의 지원을 받아도 안된다.
물과 비상식량 등을 담은 러닝 배낭을 걸머지고, 차도의 먼지를 마시며 하루종일 햇볕에 그을리다 보면 주자들은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따로 없는 몰골이 된다. 이런 고행을 스스로 그것도 돈내고(참가비가 무려 70만원이다) 하는게 보통 사람들 눈에는 제정신으로 비쳐지기 힘들다. 시인 조지훈은 음주 18단계의 마지막을 ‘폐주’ 즉, 마시다 죽는 ‘열반주(酒)’ 단계라고 했는데, 국토종단 러너들은 열반주(走) 단계를 예약해 놓은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돈 낸다고 다 뛸 수 있는 건 아니고, 국토횡단은 ‘100km 이상 울트라 대회 완주자’, 국토종단의 경우 ‘200km 울트라대회 혹은 국토횡단 308km 완주자’로 참가자격이 제한된다. 그래서 참가자도 많아야 100명대를 오르내린다.


14일간 453km 스테이지 런...마라톤 1년만에 풀코스 3시간46분 '저력'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의 국토종단 마지막날 주행 경로 지도/사진=안철수 트위터
안철수 국민의 당 대표의 국토종단 마지막날 주행 경로 지도/사진=안철수 트위터

러너 안철수가 14일간 뛴 거리는 453km, 하루 평균 32km다(원래 예정코스는 430km였는데, 안대표의 GPS시계로 측정된 실제 거리는 이보다 길어졌다).
첫 풀코스 완주 2년도 안되는 만 58세의 ‘초보’ 러너가, 하프와 풀코스 중간에 해당하는 장거리를 매일 14일간 뛸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의 도전정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런린이(런닝 어린이)’들은 엄두를 못 낼 일이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보스턴 마라톤 우승하던 전성기 때 달리기 연습량이 하루 40km였다.

안대표는 대략 10㎞ 안팎 구간을 나눠 달린 뒤 휴식을 취하고 다시 달리는 ‘스테이지 런(Stage Run)’ 방식으로 달렸다. 의심많은 직업 종사자인지라, 안대표가 두 발로 온전히 430km를 달렸다는 걸 처음엔 믿기 힘들었다. 그와 함께 구간구간을 뛴 장지훈 국민의 당 대변인은 "직전에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걸 원칙으로 지켰다"고 말했다. 안대표가 매일 트위터를 통해 올린 GPS시계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사실이었다.

안대표는 2018년부터 독일 뮌헨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 방문학자로 1년간 머물면서 마라톤에 입문했다.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하는 건 대개는 가슴이 숯덩이처럼 시꺼멓게 타들어갈 때이다. 그는 당시 쓴 책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2018, 21세기북스)에서 "나는 달리기가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에게 재기의 힘을 준 것은 달리기였음이 분명하다.

그는 2018년 10월14일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해서, 1년도 안된 지난해 7월 첫 풀코스를 4시간 6분에 완주했다. 이어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3시간 46분14초, 11월 뉴욕 마라톤에서는 3시간 59분 14초를 기록한 ‘서브 4’ 주자다.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시속 10km 속도로 뛰어도 4시간 안에 못들어온다.
안대표는 부인 딸과 함께 틈만 나면 뛰었다고 그 시절을 돌이켰다. 1주일 평균 50km, 한달에 200km를 달렸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달리기 시작한지 1년도 안돼 풀코스 3시간 40분대라는 깜짝 기록은 그 정도 주행거리가 쌓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내력이 있었기에 14일간의 430km 국토종단 유세라는 무모한 아이디어를 안대표가 머리에서 끄집어 낸 것이다.



마라톤 신옹(?) 안철수의 행복한 달리기


실제 국토종주 대회처럼 컷오프 시간이 있는게 아니고, 지지자들이 동반주를 하는 가운데, 지원차량이 옆에서 음료를 공급하면서 뛰었다 해도, 정치 앤돌핀만으로는 지탱하기 힘든 무리한 일정이다.
동영상을 통해 본 안대표는 보폭을 짧게 한 숏피치에 팔 움직임도 최소화한, 얼핏 어정쩡해보일 수도 있지만, 아마추어 러너가 장거리를 뛰는데는 이상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걸음은 시간이 갈수록 휘청거렸고 때론 부축을 받아야 했다. 중반부에는 돌부리에 채여 발톱이 시꺼멓게 멍이 들었고, 이로 인한 양측 다리 근력 불균형으로 아킬레스건 부상까지 입었다(기력이 떨어지면 발 높이가 낮아져 돌부리 같은데 채여 피멍이 들고 나중엔 발톱이 빠지는데, 그 극심한 고통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진짜 돌멩이 말고도 장거리 러닝에는 온갖 걸림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개, 차, 의사, 배우자 같은 것들이다. 시골길 달리다가 개한테 쫓기기도 하고, 졸립고 혼미해서 차도로 뛰어들어 치일뻔 하기도 한다. 의사들은 대부분 장거리 달리기는 무릎에 치명적이라고 말리고 나선다. 툭하면 집 나가서 길바닥 쓸고 다니는 남편을 좋아 할 마누라 없다.

안대표의 경우는, 지지자들이 같이 달려주고 지원 차량이 뒤에서 따라줬으니 개와 차 걱정은 없었을 것이고, 스스로 의사이면서 “무릎은 너무 안써서 상하는 것”(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p198)“이란 지론을 갖고 있고, 부인이 중간에 함께 달려주기까지 해줬다. 몸은 힘들었겠지만, 개 차 의사 배우자 걸림돌에서 해방된 행복한 달리기였을 것이다.
러너 안철수는 그렇게 행복하게 달려 총선 전날 골인점인 광화문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총선에서 ‘지지율 6.79%, 비례대표 3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초라한 총선 결과, '핵심가치'실종...아직 부족한 '주행거리'


국토종단 중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br />
/사진=안철수 트위터
국토종단 중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
/사진=안철수 트위터
주력 2년만에 국토종단을 해낸 마라톤 신옹(神翁) 안철수처럼 ‘정치인 안철수’의 성장도 가팔랐다. 그럼에도 아직 그의 정치적 주행거리는 상대적으로 그리 길지 않다. 정신력은 국토종단을 견뎌냈지만, 주력은 아직 완전한 국토종단을 해 낼 수 있는 장거리 러너라고는 할 수 없듯이.(국토종단 직후 병원으로 직행한 안대표는 다리에 깁스를 했다, 그만 하길 다행이다)

안대표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 쓴 저서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2001)’에서 핵심가치를 강조했다. 회사가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만큼 강력한 가치가 핵심가치다. 그런 핵심가치를 갖고 있는 기업이 ‘영혼이 있는 기업’이고 그의 경영 목표는 그런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영혼이 없는 기업은 그 회사 사람들에게 단지 개개인의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했다.

회사를 정당으로 바꿔도 이 말은 맞다. 국민의 당은 어땠을까. 국토종단 내내 문재인정부의 ‘폭정’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호소하고, 문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향해 '혈세낭비, 포퓰리즘, 이미지조작'이라며 날을 세운 안대표의 목소리는 미래통합당 황교안대표의 주장과 차별화되지 않았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사이를 오락가락 해 왔다고 해서 자동으로 '중도, 중용'의 대안세력이 되는게 아닌데 "지긋지긋한 양당체제를 끝장내기 위해 표를 달라"고만 했다. ‘대통령 안철수’와 비례의석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한 도구정당인지를 의심받았다.
선거중에도 선거가 끝난 뒤에도 주변에 국민의 당이 내세우는 핵심가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다.



65세 러너 안철수, '나는 달린당'이 거는 기대


애초부터 승리를 기대하기는 힘든 선거였다.
안철수가 이번 선거에서 얻은 지지는 6.79%, 190만명이다. 그 당에 누가 있는지, 정강이 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안철수’ 이름 석자로 얻은 숫자치곤 적지 않다. 한때 그에게 향했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 특히 새로운 보수를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는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
휴식 없는 마라톤은 부상을 낳는다. 안철수(뿐 아니라 선거에 패한 모든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충분한 정치적 휴식과 회복일 것이다.

달리기는 육체운동이 아니라 마음과 머리를 비우는 정신운동이다. 비운 자리에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가치를 채우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안철수 스스로도 조급함과 오버페이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수많은 일에 도전하면서 여러번 출발 지점에 서왔다. 어떤 때는 알맞은 속도로 달려갔는데, 어떤 때는 무리한 적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가 말한 ‘어떤 때’일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대선준비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필요한 핵심가치, 정치를 하는 목적과 시대에 맞는 정책수단을 고민하는 '안철수 연구소'다.

그가 ‘영혼이 있는 승부’를 할 준비가 됐을 때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1km 뒤에 자기의 몸이, 도로 여건이, 혹은 날씨가 어떻게 될지 알수 없는 게 마라톤이고 정치고 인생이라는 걸 러너 안철수는 국토종단에서 되새김질 했을 것이다.
2027년 대통령 선거. 마라톤 철인3종 트레일런으로 단련한다면 65세는 많은 나이가 아니다. 그때가 되면 ‘나는 달린당’ 사람들은 그에게 투표할 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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