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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보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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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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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네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주인집 문 앞에서 굶어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조짐’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아주 작은 사물이나 사건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큰일을 알아챈다는 의미입니다.
 
“세월호가 침몰됐을 때 우리 시대도 침몰됐고, 박근혜가 탄핵됐을 때 내 삶의 가치관도 탄핵됐다. 총선 결과를 보고는 우리가 더이상 시대의 주역이 아님을 알았다. 이제 우리의 시절은 가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으니 무거운 짐 내려놓고 말없이 떠나가네.”
 
4·15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개헌 빼고는 뭐든 가능할 정도로 압승하고 난 뒤 가깝게 지낸 지인이 받은 글이라며 보내준 내용입니다.
 
시인이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읽고, 굶어 죽은 개에게서 나라의 멸망을 눈치채듯 총선에서 보수진영의 패배를 보고는 이제 자신의 시대는 끝나고 세상이 바뀌었음을 깨달은 이 사람은 분명 품격 있는 보수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회장이 대국민사과문을 통해 자녀들에 대한 경영승계와 ‘무노조경영’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근본적으로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슨 힘이 있다고 시대에 맞서겠습니까.
 
‘현재의 체제와 사회구조, 문화와 규범을 가치 있게 여기고 지키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는 보수는 하나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품격입니다. 그동안 보수는 늘 시대의 주류고 승자였기에 품격은 보수의 가장 소중하고 핵심적인 자산이 됐습니다. 보수가 품격을 잃으면 그때부터는 사이비 보수가 되고 맙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고 버려지듯이 보수가 품격을 잃으면 보수가 아닙니다. 그땐 길바닥에 내팽개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미래통합당의 보수진영은 이번 총선에서 큰 패배를 당했을까요. 보수의 소중한 가치인 품격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막말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중요한 공천에서도 탈북민 출신을 강남에 공천하고 ‘사천’ ‘막천’ 논란 등 천박함으로 일관했습니다. 예상 밖 참패에 크게 낙심한 사람들의 현실부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사전선거 조작을 주장하고 총선 무효소송까지 벌이는 등 품격 잃은 보수의 천박함은 선거가 끝난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보수진영은 조작이라며 믿지 않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를 넘었습니다. 이 같은 추세라면 문 대통령은 유사 이래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치는 첫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코로나19 사태 덕분입니다. 종식까진 길이 멀지만 문재인정부는 2015년 메르스 대응 실패에서 얻은 교훈과 세계 최고의 건강보험제도 등을 기반으로 초기의 일부 실책과 혼선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잘 극복해 왔습니다. 세계 언론도 연일 호평합니다. ‘코리아 리스크’가 아닌 ‘프리미엄 코리아’ 시대를 열었습니다. 경제적 충격이 매우 크지만 ‘서양 콤플렉스’를 떨쳐버리고 나라의 국격이 지금처럼 높아진 적이 예전엔 없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진 못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역경’에서는 그래서 시(時)를 제일 강조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진영이 이번에 공천을 잘하고, 막말도 하지 않고, 황교안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해 잘 이끌었다 해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60~70%에 이르고 세계가 ‘K방역’에 환호하는 상황에선 승리가 어려웠습니다.
 
이기려고만 들면 언제나 집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패와 실수로부터 배우고 적응하는 것입니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은 또다른 용기입니다. 최악의 참패라고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보수를 지지해준 유권자가 무려 1200만명 41%나 됩니다. ‘논어’의 마지막장 요왈(堯曰)편에는 ‘짐궁유죄 무이만방’(朕躬有罪 無以萬方)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에게 모든 책임이 있고 처벌도 제가 받을 것이며 백성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뜻입니다. 보수 정치지도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아직 2년의 시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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