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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세]대통령의 기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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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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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4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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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재난지원금’은 지금 우리 일상을 뒤덮은 가장 핫한 키워드다. 고백하건 데 당장 피부에 와 닿는 건 역시 ‘돈’이었다. 현금 아니면 어떤가. 상품권이 됐든, 사이버 머니가 됐든 간에 말이다. 개인적으로 몇 달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5살짜리 딸과 온종일 딸을 돌봐야 하는 부모의 고통은 세 식구에게 주어진 80만원의 무게보다 가벼웠다.

재산이 얼마든, 소득이 얼마든 재난지원금을 접하는 심정은 대개 비슷한 모양이다. 며칠 전 만난 한 금융단체 수장은 가족들이 재난지원금으로 뭘 할지 잠깐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그랬다가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재난지원금 60만원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이미 의사결정권을 상실했단다. 여지가 없이 기부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기부를 선언한 곳도 적지 않다. NH농협, 메리츠금융, 신한금융그룹 등이다. 금융 계열사를 포함해 삼성 등 5대 그룹 임원과 간부들 수천 명도 기부행렬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이들 금융회사와 그룹 가운데엔 직원 의사를 묻지 않고 일단 발표부터 한 곳도 있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해서 만약 문 대통령이 기부가 아니라 재난지원금 취지를 살려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해 온전히 쓰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재정적자를 우려했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몇몇을 제외하곤 ‘재난지원금 소비 선언’과 통닭집 같은 곳을 배경으로 인증샷 경쟁에 나섰을 것이다.

‘관제기부’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문 대통령은 자발적 기부를 당부했다. 재난지원금을 받아 쓰더라도 그 역시 이미 있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대통령이 가르마를 타는 순간 이미 방향은 결정 났다.

지난 3월 문 대통령이 4개월간 급여 30%를 반납하겠다고 했을 때도 급여 반납 운동은 공직사회와 공공기관으로 번졌다. 공무원 몇몇 급여 안 받는다고 국고 형편이 획기적으로 좋아지진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지도층의 의지 표현’이라는 말도 상투적이다. 월급 덜 받는다고 없던 의지가 불타 오르지 않는다.

사석에서 만난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원성은 높은 정도가 아니다. 꼬박꼬박 월급 일정액을 떼이는데 자발적이라는 미명 아래 남들 다 받는 재난지원금도 포기하는 게 유쾌할 리 없다. 기부라는 말 안에 희생, 헌신, 박애 같은 의미가 내포돼 있지만 마지 못한 이런 기부는 기부의 의미를 잃었다.

청와대발 재난지원금 기부 캠페인을 두고 어떤 지인은 “상사가 회식한다고 중국집에 직원들 모아놓고 ‘난 짜장면’이라고 말한 것과 뭐가 다르냐”고 했다. ‘탕수육 대(大) 하나!’라고 감히 말하지 못한 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부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기부된 재난지원금을 고용, 실업 대응 재원으로 쓰겠다는 취지도 공감한다. 문 대통령이 고용보험 강화 의지를 밝힌 것과 맞물리기도 한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고용 안전망 확보는 미룰 일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이들의 사정이 딱하기는 자영업자에 비해 결코 덜하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기부를 하든, 동네 치킨집에서 먹고 마시든 재난지원금을 어떻게 다룰지는 각자의 고유한 가치판단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기부를 하고 독려에 나선 순간 파급범위에 있는 사람들과 그에 딸린 가족들은 ‘기부와 소비’ 중 하나를 고를 권리를 잃었다.

정말 고용 예산 확보가 중요했고 그래서 받아야 할 기부가 절실했다면 기부의 즐거움을 선사할 창의성을 발휘했어야 했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신청 메뉴에 기부금 항목을 넣도록 유도하는 식의 꼼수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재난 상황에 누군가를 돕는다는 기쁨을 자녀와 함께 누릴 수 있게끔 고민했어야 했다. 기부 문화를 한 단계 성장시킬 소중한 기회였다.

고위직으로부터 시작되는 '비'자발적 희생, 봉사, 헌신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 억지로 따라야 하는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은 지극히 제한적인 데다 별로 감동적이지도 않다.
[우보세]대통령의 기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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