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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현대차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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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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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1월 2일 오전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는 2020 경자년 신년회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1월 2일 오전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는 2020 경자년 신년회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새로운 출발



"우린 친구가 될 수 없겠네요."

1989년 헐리우드 스타 멕 라이언(샐리 앨브라이트 역)이 주연한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 1989)' 대사의 일부다. 대학 졸업 후 뉴욕행을 함께 하게 된 해리와 샐리가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명제로 설전을 벌이면서 던진 말이다.

경박단소와 중후장대의 대명사로 양분된 국내 대표 제조기업인 삼성전자 (51,400원 상승200 0.4%)현대자동차 (102,500원 상승2500 2.5%)는 오랫동안 이 대사처럼 친구보다는 경쟁 관계를 이어왔고, 각 그룹의 계열분리 이후 소위 '전차(電車)군단으로 불리는 전자와 자동차 업종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창업 세대인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 시절과 2세인 정몽구, 이건희 회장 시절을 거치면서 건설, 중공업, 전자, 자동차, 금융, 통신 업종에서 치열한 경쟁자로, 혹은 파트너로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현대반도체), 현대자동차와 삼성자동차, 현대증권과 삼성증권 등으로 경쟁했고,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과정에선 삼성과 현대의 재계 1, 2위의 제휴(컨소시엄명: 에버넷)로 눈길을 끌기도 했으나 LG에 밀려 협력은 실패로 끝난 경험도 있다.

지난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을 천안 삼성SDI 배터리 공장으로 초청한 것은 '친구'가 되지 못했던 양 그룹 사이에 변화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월 2일 오전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내 각계대표 및 특별초청 인사들과의 신년 합동 인사회에 참석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월 2일 오전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내 각계대표 및 특별초청 인사들과의 신년 합동 인사회에 참석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사석에선 호형호제…한 때 누가 더 멀리 치나? 경쟁도


이날 만남은 두 사람이 양대 그룹의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업무상 첫 공식회동이다. 사적으로는 호형호제하며 골프장 필드 위에서 만나 "누가 더 멀리 드라이버를 쳐내느냐"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던 때가 있었다.

이처럼 한때 270야드(270m라고 주장하기도 함)를 거뜬히 쳐내는 장타를 견주고 싱글 플레이어(70타 수준)로서 경쟁하던 것과 달리 각자가 각 그룹의 총수로서 자신의 스타일로 사업 얘기를 공식석상에서 나누기는 처음이다.

그동안 두 사람은 간간이 작은 신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들을 보였다.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진 직후인 9월 이뤄진 삼성동 한전부지 입찰은 이 부회장의 데뷔무대였다.

2007년 용산 재개발 사업과 관련한 입찰경쟁에서 쓴 잔을 마신 현대차 그룹은 사옥용으로 필요했던 삼성동 한전부지에 총력을 기울이며 삼성이 참여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삼성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불편한 관계를 보이기도 했었다.

재계 호사가들은 소소한 부분에서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관계를 해석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현대차의 고급 차종인 에쿠스를 타며 '현대차'에 애정을 보이다가 2015년 중순 쌍용자동차의 체어맨으로 업무용 차를 바꾸자, 배터리 등 협력에 적극 나서주지 않는 현대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업무용차를 쌍용차로 바꾼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 차 뒷좌석이 더 편해서요. 한번 타보실래요?"라며 여유를 부리는 동시에 현대차의 관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도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애플의 아이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노출되면서 '호형호제'하는 이 부회장과의 '불화설(?)'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다. 정 수석부회장의 스마트폰은 개인적 문제이지, 다른 뜻은 없다는 점을 현대차 측에서 조용히 진화하기도 했다.

2012년 10월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임성균 기자
2012년 10월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임성균 기자



李, "자동차 사업은 안합니다"…鄭 차량용 반도체 힘쓰기도


앞서 2012년경에는 이 부회장이 현대차의 경쟁사인 폭스바겐, GM, 토요타, BMW 등 글로벌 자동차 업계 CEO들을 만나고, 이탈리아 엑소르 그룹(피아트의 모회사)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현대차의 신경을 자극하기도 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보도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 당시 이 부회장은 잠실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나오던 길에 머니투데이 기자와 만나 "일부 오보와 달리 자동차 사업에 다시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런 사실을 현대차에 꼭 알려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왜들 자동차 사업은 안 한다고 하는 데 자꾸 그렇게(완성차 시장 재진출) 기사를 쓰는지 모르겠다"며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은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었다. 현대차와 차량용 반도체와 배터리 부문에서 협력하고 싶은 의지를 내비쳤던 시기다.

이 부회장은 오래 전부터 세트와 부품의 포지셔닝에 대한 인식이 명확했다. 현재 하고 있는 휴대폰과 TV 가전 부문의 세트 외에는 부품이 훨씬 수익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동통신서비스 사업자로 나서려 했던 1996년의 학습효과다. LG텔레콤(당시 이름)과 LG정보통신(현 LG전자)을 갖고 있던 LG그룹과 휴대폰 생산만 했던 삼성전자 입장에서 고객의 다양성에 차이가 있었다.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KTF 등에 단말기를 제공할 수 있었던 삼성전자는 수요기반의 다양성 측면에서 LG정보통신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는 학습효과다.

그래서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할지언정, 전기차를 만들 생각은 없다는 게 이 부회장의 지론이다.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제조업 종합예술'인 내연 기관 자동차와 달리, 이보다 부품이 1/10로 줄어든 전기차 시장의 경우 진입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세트업체간 경쟁은 더 치열할 것이라는 게 이 부회장의 생각이다.

따라서 수많은 전기차 업체와 경쟁하는 것보다는 이들에게 자동차용 반도체나 배터리 등 전장부품을 판매하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인식이 삼성 내부에선 강하다.

201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 현장에서 수소전기차인 넥쏘를 발표한 직후 기자들에 둘러쌓여 질문을 받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모습. 오른쪽 두번째는 앙웅철 당시 현대차 부회장.
201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전시회(CES) 현장에서 수소전기차인 넥쏘를 발표한 직후 기자들에 둘러쌓여 질문을 받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모습. 오른쪽 두번째는 앙웅철 당시 현대차 부회장.



이재용 없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만난 정의선


이런 미묘한 관계였던 시점에 현대차는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대오트론에 반도체 인력을 보강하는 등 쉽게 곁을 주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전자 업종을 오래 담당해온 기자 입장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전세계 전자제품 최대 박람회인 CES에서 만난 사람은 전자기업 총수인 이 부회장이 아니라, 자동차 기업 총수인 정 수석부회장이었다.

자주 마주치거나 만났던 이 부회장과 달리 201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만난 정 수석 부회장에 대한 인상은 강했다.

2018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수소전기차 넥쏘의 발표 후 글로벌 자동차 기자들에 둘러 쌓여 질문에 일일이 답하며, 폭스바겐과 GM, BMW와의 협력 관계에 대한 지론을 펼칠 때의 일이다.

적과의 동침이라 할 수 있는 폭스바겐과의 경쟁에 대해 묻자 정 수석 부회장은 "전기차의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것보다 이 시장의 파이를 같이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으로 힘쓰는 등 대면접촉의 폭을 넓힌 몇 안되는 그룹 총수 중 한명이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국제가전전시회 'CES 2020' 개막을 하루 앞둔 1월 6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현대차 미디어데이 뉴스 컨퍼런스에서 개인용 비행체 'S-A1'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국제가전전시회 'CES 2020' 개막을 하루 앞둔 1월 6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현대차 미디어데이 뉴스 컨퍼런스에서 개인용 비행체 'S-A1'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글로벌 위기상황에서 삼성-현대차, 친구의 길 넓어졌다


반면 이 부회장은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는데 오래 힘을 써왔다. 매년 7월 미국 선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앤코 미디어 컨퍼런스’에 참석해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등 글로벌 그루들과의 관계를 넓혔다.

사업 일반은 각 계열사 CEO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각국의 최고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과의 네트워크 확대에 힘쓰던 와중에 국정농단 재판에 연루되면서 사실상 활동이 중단된 상태를 겪기도 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은 현재도 장기화되고 있다.

이 부회장이나 정 수석부회장은 각각 부친 아래에서 경영에 참여할 때 다소 소극적이었던 모습과 달리, 의사결정의 최정점에 서 있는 지금 글로벌 경쟁에서 친구가 돼야 하는 상황이 왔다는 점을, 일본의 핵심 부품 수출금지조치와 코로나19로 인한 전세계 공급망 위기에서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동도 이런 두 총수의 인식이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두살 차이인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이 이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번 만남을 통해 그 길이 더 가까워지고 넓어졌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2013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가전전시회 참석을 위해 김포공항 출국장으로 나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사진제공=뉴스1
2013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국제가전전시회 참석을 위해 김포공항 출국장으로 나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모습//사진제공=뉴스1



  • 오동희
    오동희 hunter@mt.co.kr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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