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돈 풀어 경기 살리자" 증세 논의는 모르쇠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스1

당정청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내년까지 나랏돈을 대거 풀기로 하면서 정작 재원마련을 위한 증세 논의는 전혀 다루지 못하고 있다. 여당이 국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한 올해 증세 논의에 착수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목표인 '포용적 복지국가'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정청 "재정 풀어 경기 살리자" 공감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재정전략과 2020∼2024년 재정운용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스1

26일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지난 25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당정청은 오랜만에 적극재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문 대통령이 '전시에 준하는 재정운용전략'을 주문하자 기재부는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적극적인 재정 확대로 경제 추가하락을 방지하고 성장을 견인함으로써 세입 기반을 확충하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당정청은 재정건전성 관리 방안으로는 △재정효율성 극대화 △탈루소득 과세강화 △국유재산 관리 효율화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국가 수입을 늘리기 위한 증세 논의는 없었다고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증세에 관한 논의 자체가 다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수입 제자리걸음에 지출 늘어나면 '악어입 재정' 현실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정부의 적극재정 기조에 따라 내년에는 560조원이 넘는 초슈퍼예산이 편성될 전망이다. 코로나19에 꺾인 경기부양을 위한 한국판 뉴딜, 사회안전망 강화 등에 예산이 대거 투입된다. 내년 본예산을 올해와 같은 9.1% 수준으로 인상하면 558조9000억원에 달한다. 10%가 늘어나면 563조5000억원이다.

경기 침체로 세수가 줄어드는데 지출은 늘어날 경우 악어 입처럼 벌어진 재정 그래프가 불가피하다. 재정당국에서 가장 우려하던 형태다. 올해 1분기만 해도 국세수입이 지난해 1분기보다 8조5000억원 감소했다. 추경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올해 세수펑크가 최대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산업 침체에 따른 세수 악화가 내년에 반영되면 국가채무비율도 43%까지 악화될 수 있다. 채무비율이 상승하면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 우려가 커진다.
내년 3월까지가 증세 논의 골든타임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이 때문에 적극 재정과 더불어 수입 확충을 위한 증세 논의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규철 한국경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경제전망을 발표하며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고,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단계"라고 바라봤다.

전문가들은 현재가 증세 논의를 위한 '골든 타임'이라고 본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 교수는 "내년 4월 보궐선거 직전에는 증세를 논하기 힘들고, 보궐선거가 끝나면 차기 대선이 1년 남는다"며 "증세를 논의할 수 있는 기간은 실질적으로 10개월 남아있다"고 내다봤다.


우 교수는 "고용보험의 전국민 확대 등 사회안전망 강화는 의무지출이 되기 때문에 항구적으로 소요가 발생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은 증세로 마련해야 한다"며 "여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등과 협의하면 패스트트랙도 가능한 이 시기에 증세 로드맵을 만들고 전면적인 세제개편을 통해 부가가치세·에너지환경 관련 소비세 등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