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결혼해야만"…정자·난자 냉동 차별에 뿔난 中 여성들

/사진 = 게티이미지

"난자 20개를 얼리는 중이에요. 보관하다 아이를 갖고 싶을 때 꺼내서 사용할 계획이에요."

아이돌 가수 출신의 홍콩 배우 차이줘옌(37)은 지난해 '난자 냉동' 소식을 알렸다.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동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행사의 기념곡을 제작할 정도로 인기 있는 연예인의 이 발표에 중국 여성들은 열광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미혼 여성의 난자 냉동을 금지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중국에서 남성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정자를 자유롭게 냉동할 수 있으나, 여성은 결혼 후 혼인증명서와 신분증, 출생증명서를 지참해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중국의 젊은 여성들은 국가에 '원하는 때 임신할 권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해 한 여성이 난자 냉동을 거부한 병원을 고소한 것을 기점으로 웨이보 등 SNS에는 '난자 냉동 허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정자 냉동 되는데 난자는 왜 안돼"… 분노하는 중국 여성들

난자냉동 거부에 반발하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테레사 수(쉬자오자오). /사진 = 시나뉴스

지난 27일(현지시간) 중국 웨이보에는 '난자 냉동'이 500만 건이 넘는 검색 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난자 냉동 거부 병원을 고소한 여성 쉬자오자오(31)의 주장이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최고권력기관)에 상정돼야 한다는 글이 확산되면서다.

쉬자오자오는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수도의학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자신의 난자 냉동을 신청했다 거부당했다. 이 병원은 쉬자오자오에게 "난자를 얼리는 대신 얼른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쉬자오자오는 법원에 병원을 고소하며 "남성들은 아무 조건 없이 정자를 냉동할 수 있다"며 "선택권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는 느낌"이라고 강조했다. 보수적이고 성차별적인 중국 내의 풍조가 여성에게만 지나친 멍에를 씌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난자 냉동'은 결혼과 출산 계획이 있지만, 당장은 실현이 어려운 여성들을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난소의 기능은 35세를 기점으로 서서히 쇠퇴하기 때문에 젊을 때 난자를 얼린 후 아이를 갖고 싶을 때 해동해 사용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배우자가 없는 미혼 여성들의 난자 냉동이 금지돼 있다. 중국 정부는 산아 제한 정책과 난자 암시장 활성화 등을 이유로 미혼 여성들이 난자를 냉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배우자가 없는 중국 여성들은 해외로 '원정 냉동'에 나선다. 2013년에는 아이돌 그룹 '엑소'와의 열애설로 국내서도 잘 알려진 여배우 쉬징레이가 미국에서 난자 9개를 냉동한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부러워하는 중국 여성들…"국가, 기본권 침해 말라"

베이징의 한 길거리. (현지 시민 제공) /사진 = 오진영 기자

중국 여성들은 '내 몸은 내 것'이라며 중국 정부가 부당하게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A씨(28)는 "최근 중국의 젊은 여성들은 일이나 유학 등을 이유로 늦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나중에 나이가 들면 아이를 갖지 못할 수도 있는데, 관련 규정이 정비돼 중국 내에서도 난자를 얼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웨이보에도 '국가는 여성의 출산권을 침해하지 말라'는 글이 수천 건 이상 게시됐다. 한 중국 누리꾼은 "배우자가 있어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나. 이혼했거나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기본적인 권리도 가질 수 없는 건가"라고 주장했다.

중국 내의 강력한 규제와는 별개로 난자 냉동 절차는 어렵지 않다. 생리가 시작되고 2~3일부터 7~10일간 과배란을 유도하는 주사를 맞은 뒤 배란 직전에 여러 개의 성숙한 난자를 채취하면 끝난다.

한국은 수천만원 대의 비용이 필요한 해외에 비해 난자 냉동이 저렴한 편이다. 난자 채취 개수나 보관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3년 기준 300만원~400만원대 선이어서 중국 여성 중에는 난자 냉동이 자유롭고 비용도 저렴한 한국을 부러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국적의 교환학생 B씨는 "한국에서는 난자 냉동 비용이 저렴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시술받고 싶다"며 "유학도 가고 싶고 해외 취업도 하고 싶은데 아이도 포기할 수 없어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