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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다섯 채를 현찰로"…윤미향을 향한 주술[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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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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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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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50대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나의 첫 직장은 일본대사관 옆이었다. 내근 부서에서 근무할 때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대사관 앞에 모인 시위대를 맞닥뜨렸다. 굳게 닫힌 대사관 문앞에서 날이 좋건 궂건 수요일이면 구호를 외치는 이들을 지나쳐 따뜻한 밥을 먹으러 가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익숙한 풍경은 일상이 됐고, 무덤덤함이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직장을 옮기고, 30년 가까이 월급쟁이 생활을 해오면서 무탈하게 먹고 살아 오는 동안에도 그 집회는 계속됐고, 윤미향이라는 사람이 그 세월을 길에서 끝까지 버틴 사람들 가운데 한명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그가 성금이나 정부 지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면 아무리 그 세월의 공이 컸다 하더라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이견이 있을수 없다. 형사처벌이나 의원자격박탈도 당연히 책임의 범위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이 아닌 외부인으로선 기나긴 세월속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신뢰할만한 조사결과가 나오기 전에 함부로 말을 보태거나 결론을 내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적대적이었던 세력들과 언론이 벌이고 있는 '주술적 공세'에 대해서는 언론'업자'로서 할 말이 없지 않다.

주술에 사용되는 주문은 쉽고 짧고 감성적이고 반복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잘 먹히고 뇌리에 콱 박힌다. 대중들에게 먹혀들고 있는 대표적인 주문의 사례는 ‘집 5채, 현찰로 산 윤미향’이다.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이 8일전 했던 주장이다. 대부분의 미디어가 이를 그대로 전하거나 확대 재생산해 반복했다.
엊그제 만난 언론계 후배는 “집을 다섯채나 현찰로 사고, 지금도 집이 세 채라는거는 사실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그 후배처럼 많은 사람들이 '집 다섯채를 현찰로 샀다니, 위안부 지원금과 모금액을 빼돌린 돈이겠지'라고 미리 단정짓고 있다. 네이버 연관검색어에도 '윤미향 집5채'가 올라와 있다.
'사실'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할것이다. 주문이 먹혀들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윤의원은 1993년 결혼했고 1995년 4500만원짜리 빌라로 집장만을 시작했다. 30년간 몇천만원짜리 집을 사고 파는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신고가액 1억8600만원(매입가 2억2600만원)짜리 본인명의 아파트와 배우자의 고향인 함양에 4740만원짜리 빌라를 갖고 있다고 해명했다. ‘다섯 채’는 사고 판 집을 다 합친 숫자이다. 금방 확인될 부동산거래내역을 꾸며대지는 않았을 것이다(이 식으로 하면 나도 아파트를 세 채나 산 사람이다. 근무지나 무슨 사정이 있어 이사를 자주 다녔던 사람이라면 집을 한 열 채씩은 샀을 것이다).
수십억원짜리 강남 아파트면 몰라도 몇천만원 짜리에서 시작해 조그만 집 사고 팔면서 늘려가는데 현금으로 사는게 특별히 이상할 게 없다. 대출을 끼고 집을 샀다면 "운동가라더니 재테크 귀재, 대출까지 끌어다 집 다섯채. 금융 특혜 의혹"이라는 주장과 보도가 당연히(?) 뒤따랐을 것이다.
아마 곽의원은 다섯채와 현금 따로 떼어놓으면 없는 말은 아니니, 뭐가 틀렸냐고 할 듯하다.
실제로 그는 윤의원의 해명 이후인 2일에도 똑같은 발언을 반복했다. “할머니들은 만원 한장 못받았는데...집 5채를 현찰로 사고, 집3채를 보유한 8억 자산가가 됐다”고 했다. 집 5채는 지금까지 사고 판 집 전부를, 3채는 친정 아버지 집까지 합산한 듯 하다.
'할머니들은 만원 한 장 못 받았다'는 메시지가 보태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만원 한장 못받았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할머니들에게는 매달 300만원에 가까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도 정대협으로부터 받은 1억원을 비롯,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미향의 집 다섯채와 할머니들의 '만원 한장'을 댓구로 만든 것이다

TF위원장인 곽의원이 윤의원의 해명이나 저간의 상황을 검토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도 그는 '주문'을 반복한다. 그는 서울지검 특수3부장을 지낸 특수수사통이다. 특수수사는 8할이 여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곽의원은 1991년 공안여론을 조성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희대의 조작수사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담당검사였다).

윤미향 논란에서 등장하는 주술이 물론 이것 하나만은 아니다.
‘단독 22억원 증발’. 분노유발 제목이지만, 총자산이 23억원인 단체에서 바로 이전 달(2018년3월)까지 장부에 기록돼 있던 22억원을 4월달에 전액 빼내서 횡령한다는 건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국세청 홈택스 시스템 개편으로 인해 이월금액 불러오기 기능이 중단돼 장부에서 누락된 실수다(실수라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맥주집에서 3300만원 썼다’ ‘13억원 국고보조금중 8억 사라졌다’는 기사도 비슷한 류의 회계처리 문제다. 하지만 대중들의 뇌리에는 '22억원, 8억원, 증발, 맥주값 3300만원'만 각인된다.
‘할머니들은 난방비가 없어서 냉골에서 지낸다’ ‘정의연이 수령님 찬양노래를 불렀다’ ‘일본 과자를 먹었다’ 등도 치졸해보이지만 먹혀 들어가는 주문들이다.

윤미향을 문재인정부의 '약한 고리'로 여기고 공격하는 보수 미디어나 유튜버들은 이런 주장과 기사들을 끝없이 중계하고 증폭한다. 언론의 역할과 행태를 논할때 '지사적 언론'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지만 이 정도 되면 '주술적 언론'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회계감사를 안받으면 믿을 수 없는 불투명한 집단'이라는 낙인도 소규모 비영리 법인들에게 기계적으로 적용하기엔 무리다. 법적 의무가 없는 비상장법인에게 상장법인의 공시의무를 따르라고 하는 격이다.
공익법인(비영리법인)의 회계 관련 의무는 공익법인 회계감사와 공익법인 세무확인 두 종류가 있다. 자산규모 100억원 이상 비영리법인은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고, 자산 5억이상 100억원 미만, 혹은 수익금액 3억원 이상 단체는 회계장부에 대해 '세무확인'이 의무화돼 있다. 세무확인은 2명이상의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로부터 받는다.
회계부실 문제가 불거져 외부감사 요구가 이어지자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법적 절차에 따라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는 것은 '세무확인'을 일컬은 것으로 보인다. 정의연도 회계결과를 국세청 홈택스에 올리고 홈페이지에 공개해두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비영리법인의 외부감사 의무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됐고, 실제로 법률 개정도 이뤄질 것으로 본다. 영세 공익법인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공인회계사회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국선변호사같은 역할을 하는 '국선회계사'제도같은 걸 만들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처음 기자회견에서 제기한 것은 회계부정 문제가 아니라 30년을 같이 해 온 윤미향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정의연이 그동안 모금한 돈을 할머니들에게 쓰지 않고 다른데 썼다는 '억울함' 두가지였다. 2차회견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 ‘사람이 못할 일'이라고 분노의 강도가 커졌다. 이 할머니가 직접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언론을 통해 접한 회계부정 의혹 관련 기사들이 분노의 강도를 키웠을 것이다. 주술의 효과는 이용수 할머니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용수 할머니와 윤의원은 30년을 함께 지냈다.
그런 동반자가 저렇게까지 배신감과 억울함을 느낄 거였으면 민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게 나았을 것이다. 왜 사전에 할머니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지 못했을까, 저 정도의 배신감과 분노가 쌓일 정도의 신뢰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법적 판단을 떠나 윤의원이 가장 아프게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윤의원의 공과와 무관하게, 여성의 인권과 전쟁범죄에 대한 고민은 커녕 위안부 존재를 부인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방했던 세력들이 고발과 공격의 주체가 되는 건 염치 없는 일이다. 이용수와 윤미향의 벌어진 상처 틈을 비집고 칼을 들이미는 주술사들의 노하우는 이미 한국 정치와 언론의 고유모델로 정착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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