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 화재보험료 내고도 "배상 안돼"…억울한 세입자 막는다

/사진제공=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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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세입자인 A씨는 최근 날벼락 같은 일을 연달아 겪었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음식을 끓이다 깜빡 잠이 든 사이에 가열된 기름이 튀어 배기후드와 천장에 불이 붙었고, 스프링클러가 터진 후에야 겨우 불길이 잡혔다. A씨는 집주인과 상의해 자비로 천장 등을 자비로 수리했고, 아파트가 가입된 화재보험의 보상금을 받아 수리 비용 상당 부분을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개월 후 보험사는 A씨에게 보상금 지급에 따른 구상권을 청구했다. A씨는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기 때문에 피보험자가 아니고, 오히려 화재의 과실을 진다는 게 보험사의 주장이었다. A씨는 "입주 기간 내내 매월 관리비에 포함된 보험료를 부담했던 게 불이 났을 때를 대비한 게 아니냐"며 억울했지만, 보험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A씨와 같은 아파트 임차인의 억울한 사례를 막기 위해 보험료를 직접 부담하는 임차인을 상대로는 보험회사가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도록 하는 예외조항을 화재보험 약관에 신설한다고 4일 밝혔다.

아파트 거주자는 화재 피해 보상을 위해 '아파트입주자 대표'(보험계약자) 명의로 단체화재보험에 가입해 있으며, 보험료는 매월 아파트 각 세대의 거주자가 매월 관리비에 포함해 내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아닌 임차인 거주자는 매월 보험금을 내고도 해당 보험의 피보험자 지위를 획득하지 못한다. 2011년 대법원 판례도 "화재보험 계약의 피보험자는 아파트 등 보험목적물의 소유자이며, 임차인이 보험료를 냈더라도 피보험자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특히 A씨처럼 임차인의 과실로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보험사는 아파트의 실거주자가 아닌 집주인에게 보험금을 주고 임차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 보험료를 내고도 오히려 화재 피해를 고스란히 배상해야 하는 셈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아파트·연립 등 공동주택이 가입한 단체화재보험은 약 1만9000건이며, 이는 공동주택의 한 단지별로 가입이 이뤄지는 만큼 실제 보험가입 세대는 1000만 세대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모든 임차인 세대가 A씨처럼 억울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에 금감원은 화재보험 약관에 '임차인이 보험료를 부담하는 경우 보험회사는 임차인과 가족에 대해서는 대위권(구상권)을 제한한다, 다만 임차인과 가족의 고의로 발생한 손해는 대위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의 예외조항을 신설하도록 했다.

이를 아파트뿐만 아니라 상가·오피스텔 등 화재보험 상품은 물론 재산종합보험 등 화재위험을 보장하는 다른 상품 약관에도 똑같이 적용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각 손해보험사가 자율적으로 약관 개정 또는 '보상 실무지침' 반영을 통해 오는 7월부터 우선 시행하도록 안내했으며, 동시에 오는 9월까지 표준약관 역시 개정을 완료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화재피해의 보장 사각지대에 있는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약관 개선"이라며 "화재보험 상품설명서에도 약관 개정 내용을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