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심사' 내일 판가름…기각시 檢도 타격 불가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경영권 부정승계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여부가 내일 판가름난다. 2017년 2월 국정농단 재판으로 구속돼 1년간 수감생활을 하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지 2년 4개월만에 다시 한번 구속위기에 처한 셈이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오는 8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46·사법연수원 30기) 심리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된다. 이날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김종중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도 함께 구속심사를 받는다. 수사기록이 방대한 만큼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이날 밤 또는 9일 새벽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 6일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는 모습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50여차례 압수수색·110여명 소환조사'…삼바 수사 시험대 이번 구속심사는 검찰과 삼성 양측에게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인만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이들 세 사람에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행위,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사장에게는 위증 혐의를 추가했다.

삼성합병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지난해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후로 검찰은 관련자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신 압수수색과 소환조사에 주력하며 최대한의 증거를 확보하고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를 끝으로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다.

삼성에 따르면 검찰 조사는 지난 1년 8개월간 50여 차례의 압수수색과 110여 명에 대한 430여회 소환 조사 등 강도 높게 진행됐다. 실제로 수사팀은 이복현 부장검사 명의로 각각 약 150쪽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담은 수백쪽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의 수사기록은 400권, 20만쪽 분량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피의자가 주거 및 직업이 불안정해 도망할 우려가 있거나 증거인멸 우려가 있을때, 또는 사안의 중대성을 따져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경우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 해당 범죄가 중대한 사안이고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됐다는 점을 입증하는데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정점에 이 부회장이 있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입증됐느냐가 구속 여부를 판가름할 전망이다. 삼성그룹 승계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그리고 삼성바이오의 회계 조작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이 부회장의 지시나 관여가 있었는지에 대해 검찰이 '확실한 물증이나 진술'을 내놓지 않는 이상 구속되긴 어려울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로서는 1년8개월간 공을 들인 이른바 '삼바 수사'가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파기환송심 두번째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장면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구속영장 기각되면? 검찰, '역대급 치명상'만약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다면 검찰로서도 큰 타격이 될 전망이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5월과 7월,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두 차례 모두 기각된 바 있다. 여기에 관련 의혹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던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기각되면, 검찰로서는 '수사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오랜기간 전방위적으로 이어진 수사에 이어 최근 이 부회장측이 검찰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기소 여부가 타당한지 객관적 판단을 받기 위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음에도 영장 청구를 강행한데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은 것도 부담이다.

법조계에서도 검찰이 '관행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무리한 영장 청구라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분위기다. 구속여부만 따졌을때 구속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룬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감시를 늘 받고 있는 대기업 총수에게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진 않을 것"이라며 "다만 범죄 혐의의 중대성이 구속여부를 판가름 할 것으로 보이는데 확실한 물증이나 진술이 확보지 않는 이상 (구속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는 추세가 강하다는 점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일각에서는 '수사심의위 소집요청에 검찰이 심기가 불편한 것 아니냐'라는 말도 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4일 기자단에 문자를 보내 "이 부회장이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하기 이전에 이미 영장 청구 방침을 결정하고 검찰총장에게 승인을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분식의 규모, 죄질,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 등을 감안했다"고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19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을 방문, 차세대 디스플레이 전략 등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측 "성실하게 협조했는데…유감" 적극 대응 이 부회장측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유감'을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소명에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지난 5일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경영위기 상황에서도 검찰 수사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했다"고 밝혔고, 이 부회장도 앞선 검찰 조사에서 "직접 지시받거나 관여한 적이 없다"며 모든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바 있다.

지난 6일에도 검찰측이 직접 승계 작업과 관련한 보고를 이 부회장이 직접 받았다는 증거를 확보했다는 언론 기사가 나오자 삼성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즉각 해명에 나섰다. △어떤 불법적인 내용도 받거나 지시한 적이 없고 △수사에 협조한 인물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정황이 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출처가 분명치 않고 유죄를 예단하는 보도를 자제해달라"며 강력 반박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은 2018년 2월 이후 2년 4개월만에 또 다시 총수 재구속이란 '불명예'를 안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미중 무역분쟁 등 대내외 악재가 산적한 가운데 삼성이 우려하는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삼성은 이날 호소문을 내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관련 법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다.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역시 국제회계 기준에 맞체 처리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의 위기는 삼성으로서도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며 "삼성이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