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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야옹이·흰둥이'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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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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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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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야옹이와 흰둥이' 10년만에 재출간…윤필 작가 "이젠 책으로 낼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그런 세상을 더 바랐다"

세상의 모든 '야옹이·흰둥이'들을 위하여
책 추천사를 써달란 편지가 왔었다. '야옹이와 흰둥이(문학동네)'란 만화책이었다. 2011년에 나왔던 책을, 10년 만에 다시 낸다고 했다. 작가님이, 내가 추천사를 썼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왜 하필 나였을까' 싶어 고민이 들던 차에, 초판에 들어있었다던 '작가의 말'을 읽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언젠가 사람들이 '야옹이와 흰둥이'를 읽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란 반응을 보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너무나 기사를 쓰는 내 맘이어서, 그 문장에 빨려 들어갔다. 예전에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체험한 뒤, 내 기사 댓글에 이렇게 썼었다. "먼 훗날 이 기사를 봤을 때, '이거 뭐 당연한 얘길 이렇게 장황하게 써놨어?'하고 읽혔으면 좋겠다"고. 나중엔 문제를 지적한 이 글이 낯설 정도로, 세상이 좋게 변했음 싶단 마음이었다.



빚 갚는 야옹이와 흰둥이의 '하루살이'


세상의 모든 '야옹이·흰둥이'들을 위하여

줄거리는 이랬다. 야옹이와 흰둥이는 보호자와 한집에 살았다. 어느 날 밤, 빚이 감당 안 됐던 보호자는 집을 나가 버렸다. 무거운 빚더미는, 고스란히 야옹이와 흰둥이 몫이 됐다. 두 녀석은 그때부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마트 판매원, 전단지 아르바이트, 피자 배달, 공사장 노동 등. 그러니까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똑 부러지는 야옹이와 성대를 수술해 말도 못 하는 강아지 흰둥이. 둘은 참 성실하고 묵묵히 일했다. 그러나 동물이란 이유로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도 못했다. 단지 무엇이라서 차별받는 건 녀석들뿐만이 아녔다. 비정규직이라서, 외국인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세상은 이들을 내칠 때가 많았다. 열악했고, 부조리했고, 편견이 가득했으며, 냉소적이었다.

계절과 무관하게 한겨울 같던 날들이 오갔다. 이를 감싸 안은 건, 난로 같은 서로의 온기뿐이었다. 아프면 밤새 업어주고, 화났던 하루를 같이 욕해주고, 우울할 땐 유기농 사료에 고구마까지 쪄주며, 그래도 살자고, 살아내자고 토닥였다. 3권이 다 끝나도록 거친 절망이 거창한 희망으로 변하진 않았어도, 어쩐지 그게 더 현실을 닮은 것 같아 적잖게 위로가 됐다.
세상의 모든 '야옹이·흰둥이'들을 위하여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았다. 한 장면이 유독 기억난다.

매일 힘을 내며 잘 버티던 야옹이가 막막한 현실 앞에 무너져내렸다. 야옹이를 돌봐줬던 빵집 사장님은 트럭으로 내몰렸고, 깡패들에게 시달렸고, 행인들은 "노점상은 실은 부자"라며 수군거렸다. 자꾸 우울해졌다. 몇 날 며칠을 누워만 있었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애써 힘을 내어 나왔을 때 배달하던 흰둥이는 비바람에 날리는 신문을 줍고 있었다. 야옹이는 힘껏 뛰어 함께 주웠다.

마침 비 오는 날, 카페서 그 만화를 읽다가, 눈물이 왈칵 고여버렸다. 부스러기처럼 흩날리는, 자그마한 희망을 겨우겨우 부여잡는 것 같아서.



윤필 작가를 만나다


세상의 모든 '야옹이·흰둥이'들을 위하여

추천사를 붙잡고 참 오래 고민했다. 쓰고, 다 뒤엎고, 또 썼다. 잘 써서 오랜만에 세상의 빛을 보는 야옹이와 흰둥이에게 미약하나마 힘이 됐으면 싶었다. 따뜻하고 먹먹한 책의 고운 결을 어떤 문장으로도 담기 힘들어, 머릴 쥐어뜯고 커피를 들이부었다.

그리고 윤필 작가(41)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럴 땐 기자여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만나고픈 사람을 만날 명분이 있는 거니까. 어느 맑은 월요일 아침, 윤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문이 열렸고, 수더분하게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그가 나타났다. 어쩐지 야옹이도, 흰둥이도 조금씩 닮았다고 느껴졌다. 윤 작가가 커피를 내어주겠다고 한 덕분에, 다소 어색한 시간이 친절히 메워졌다. 노트북을 꺼내놓았지만, 얘기하며 기록할 맘은 없었다. 그와는 오롯이 얘기만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작업실을 잠시 구경했다. 벽 한쪽에 반가운 야옹이와 흰둥이가 있었다. 또 다른 어딘가엔 호빵맨 그림이 붙어 있었다. 거기엔 이런 문구가 있었다. '내가 하늘을 날아갈 테니까, 꼭 너를 구할 테니까.' 유심히 보고 있으니 윤 작가가 "호빵맨 작가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때 봉사하러 가서 쓴 글과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너무 감동적이라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았다고.

비로소 내온 커피 한 잔을 놓고, 테이블에 마주 앉아 그와 얘길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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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야옹이와 흰둥이인가요?
원래 동물 만화를 그리려고 했어요. 부인이(그땐 여자친구) 고양이를 좋아하거든요. 습성만 표현하면 내용이 없을 것 같아, 이야기를 넣었지요.

- 동물인 이유가 있는 걸까요?
편견이 없어지거든요. 캐릭터가 남자냐, 여자냐, 외모는 어떻냐, 나이는 얼마냐 이런 것들로 이입하는 게 달라져요. 동물은 그런 게 좀 없고, 우화처럼 하니 그런 게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 그게 노동이란 소재였던 거군요.
맞아요. 제가 경험한 것도 있고, 한겨레21에서 연재된 '노동 OTL'을 참고한 것도 있고요.

- 일하시면서 보신 게 뭔지 궁금해요.
대학생들이 하는 걸 많이 했어요. 공사장에서도 일했었고요. '안전망'이 보이더라고요. 원칙적으론 층마다 있어야 하거든요. 떨어지지 말라고, 위험하지 말라고. 근데 그냥 형식적으로 해놨더라고요. 그게 '사회적 안전망'처럼 보이는 거예요. 이중, 삼중으로 안 돼 있구나, 한 번 실패하면 끝나는 현실과 비슷하구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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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그게 왜 눈에 들어왔을까요, 일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떤 친구가 저보고 그래요. '행태주의자' 같다고. 어릴 때부터 관찰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행동을 보고 나름대로 정의 내리는 스타일이랄까요(웃음). 왜 저런 말을 할까, 저런 행동을 할까, 그런 게 관심이 가더라고요.

- 혹시 무슨 계기가 있었을까요?
치아를 다쳐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어요. 친구들이 몇 년을 놀리더라고요. 그때 같은 반에 지적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 아이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치아 하나를 가지고도 몇 년을 고생했는데, 쟤는 평생 괴로운 일이 많겠구나.'

그때부터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호떡 장사 아주머니가 50원짜리 호떡을 파는 것도, 가게를 차렸다가 철거되는 것도요. 구걸하시는 분들이 밥을 어떻게 먹나 싶었는데, 시장 상인 분들이 챙겨주시는 것도요.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면 달걀 같은 거 던지는데, 썩는 냄새가 나잖아요. 일하는 분들이 다 닦더라고요. 그런 게 자꾸 보였죠.

- 오랜만에 좋은 만화를 봐서, 참 좋더라고요. 다시 출판하는 기분은 어떤가요?
기분이 좋긴 해요. 근데 사실 기분이 좋으면 안 되는데요.

- 왜요?
야옹이와 흰둥이가 2011년에 처음 책으로 나왔잖아요. 지금이 2020년이고요. 사실 출판사에서 이랬으면 싶은 거죠. "이제는 구태의연한 얘기인데, 책으로 낼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 게 더 좋은 거죠, 사실은.

- 공감됩니다. 저도 기사 쓸 때 늘 그런 마음이거든요. 휠체어 체험을 한 게 10년 전인데, 변화가 너무 더딘 것 같아요.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건 정책 입안자들이 관심이 없어서일 거에요. '난 아무 문제 없는데, 그걸 왜 신경 써' 이런 게 아닐까요. 전동 휠체어를 타는 친구가 있거든요. 도로서 시속 25km 이상 못 달리게 하는데, 도로에선 그게 더 위험하다고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정책 만드는 사람이, 전동 휠체어를 안 타기 때문이라고요.

- 그래도 야옹이와 흰둥이를 다 보니까요. 전 주위를 보는 게 더 섬세해졌어요.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도, 마트 직원분도, 다 야옹이와 흰둥이처럼 보이더라고요. 저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시선이 촘촘해졌어요.
그런 반응 보면 기분이 좋긴 했어요. 한 명만 바뀌어도 성공한 거겠지요. 흰둥이 연재할 때 그런 게 있었거든요. 애들을 괴롭히다가 나중엔 친구가 되는. 한 독자가 그런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친구를 너무 괴롭혔는데, 만화를 보고 반성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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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사람이 마음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전 작가님 만화 보면서, 이 분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네, 그런 마음이 있었죠. 사실 제가 바라는 건 큰 게 아니에요. 딱 초등학교 때 배우는 도덕책 수준이면, 수많은 문제 중 상당 부분은 없어질 것 같아요. 근데 그걸 다 잊고 살잖아요. 결국, 주변 사람들이 배려 있는 행동과 말을 하는, 그런 작은 것들이죠. 그것만 되어도 일이 고되고 삶이 힘들어도 기운이 나겠구나 싶어요.

- 그래서인지, 유독 보고 눈물이 났다는 독자들도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한 무용학과 학생이란 독자는 학비가 500만원씩 되어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데, 야옹이와 흰둥이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상황과 처지가 겹쳐져서 그런 가봐요. 어떤 분들은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생각난다고 하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각나거나, 이주 노동자가 떠오르거나, 나 같기도 하고요.

- 저도 그랬어요. 현장에서 만난 분들이 떠올라서, 자꾸 속상하더라고요.
그건 기자님이 좋은 분이라 그래요(웃음). 만화를 보고 좀 생각하셨으면 하는 분들은 관심이 없고, 그만 관심 가져도 되는 분들이 관심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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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말이 많지 않다는 윤 작가와 그리 대화를 주고받았다. 세상이 변했으면 하는 마음, 그러나 맘처럼 안 된다는 마음이 닿아 그를 오랜 친구처럼 느끼게 했다. 만화가 나온 지 10년이 흐른 지금, 그는 어떤 마음일까.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가의 말'은 달라져 있었다. 초판에서 '이 만화가 나중엔 공감이 안 됐으면 좋겠다'고 했던 그는, 다시 출간하는 책에선 '문제가 없는 세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맘이 변한 것일지.

- '작가의 말'이 10년 전과 바뀌었더라고요. 아마 마음이 좀 달라지신 걸지요?
그러게요, 요즘은 좀 부정적인 것 같아요. 예전엔 세상이 좀 나아지겠구나, 기대를 품었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문제 하나가 해결되는 동안, 새로운 문제가 10개씩 생긴다는 걸요. 문제 총량이 점점 늘고 있더라고요. 감당이 안 되는구나 싶은 거죠.

그래서 뉴스도 많이 끊었어요.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아, 난 그거 몰라. 신경 안 써도 돼.' 그렇게 해도 안 되니까. 중심 잡으려면 노력을 해야겠지요. 소중한 걸 놓으면 안 되니까요.

-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걸 그리고 싶으세요?
야옹이와 흰둥이 같은 것만 그리고 싶지만(웃음), 안 되겠죠.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야지요. 점점 책임질 게 많아지잖아요. 저 혼자 손해 보는 거면 괜찮은데, 주변이 힘들어지니까요. 웹툰도 상업 예술이라 그걸 배제할 순 없어요. 그런 충고를 많이 들었어요. 일단 인기를 끈 다음에,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요. 옛날에 그런 말 많이 들었잖아요.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간 다음에 너 하고 싶은 것 해" 그런 거요(웃음).

사실 그림책을 그리고 싶어요. 세상의 다양한 권리를 소재로요. 각자가 가지고 태어난 기본 권리를 소재로 그릴 것 같습니다.

- 작가님의, 삶을 관통하는 생각이 느껴집니다
소명이란 말을 좋아해요. 각자 소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훌륭한 분들도 있지만, 소명이나 책임감보단 돈을 좇는 경우가 많죠. 나 이외의 존재에 관심이 별로 없고요.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때만 봐도 알 수 있어요. 택배 운송이 없으면 살 수가 없고, 농부가 걸렸다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겠죠. 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나 혼자만 잘나서 살 수가 없어요.

- 묵묵히, 조용히 맡은 바 할 일을 다 하는 거겠죠. 흰둥이처럼요. 남에게 피해 안 주고, 가만히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챙기고요.
착한 분들도 참 많아요. 사고가 나거나 할 때 보면, 한국 사람들이 정이 참 많구나 싶고. 그것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세상의 모든 '야옹이·흰둥이'들을 위하여

- 마지막으로, 야옹이와 흰둥이를 보는 분들께 전하고픈 말이 있나요?
제가 '도토리의 집'이란 만화를 보고 밤새 펑펑 울었던 적이 있어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잠도 거의 못 잤지만 행복하더라고요. 다음날, 운전해서 출근하고 있었어요. 도로에서 보면 막 끼어들고, 엉망진창이잖아요. 그래도 좋은 마음이 남아서 '먼저 가세요' 그러면서 양보를 계속했어요.

한 5분 지나니까, "저 자식 저거, 누굴 만만하게 보나"하면서 욕이 막 나오더라고요(웃음). 밤새 울고 감동을 받아도, 그 효과가 5분을 못 가는구나 싶었어요. 무슨 작품을 해도 감동이 오래갈 거라 기대하면 안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됐고요.

그래도 단 5분이라도, 내 주변이 행복했었던 거잖아요. 그게 굉장히 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제가 무슨 대단한 작품을 하는 거겠어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해 하는 겁니다.
기자가 그린 야옹이와 흰둥이. 잘 그렸다고 칭찬 받았다./사진=뿌듯한 남기자
기자가 그린 야옹이와 흰둥이. 잘 그렸다고 칭찬 받았다./사진=뿌듯한 남기자



  • 남형도
    남형도 human@mt.co.kr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머니께서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걸 보고 기자가 됐습니다. 시선에서 소외된 곳을 크게 떠들어 작은 변화라도 만들겠다면서요.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음 간직하려 노력합니다. 좋은 제보 언제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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